마침내 찾은 비운의 여배우 얼굴

주성하-탈북자, 동아일보 기자
2020.09.11

사랑하는 북녘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요즘 태풍 피해 복구한다고 모두 거기에 정신이 없겠네요. 똑같은 태풍이 와도, 남북의 피해가 크게 다릅니다. 여긴 인구밀도도 높고, 산업단지도 조밀하지만 치산치수가 잘 돼 있고, 집들도 든든해서 북한처럼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고, 해일에 집이 잠기고 하진 않습니다.

태풍이 올라오면 남쪽부터 상륙하기 때문에 강도가 더 세지만 같은 태풍도 잘 사는 나라인가 못사는 나라인가에 따라 피해 규모가 하늘땅 차이입니다. 가뜩이나 돈도 없고, 코로나로 대외무역도 막혔는데, 무너진 피해 현장 복구하려면 또 인민들 엄청 짜내겠네요.

저는 여기서 북한이 돌아가는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면서, 또 언론인으로서 잊혀진 또는 감추어진 북한의 역사를 발굴하는 일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북한 여배우 우인희.
북한 여배우 우인희.
Photo courtesy of Wikipedia

이번 주에는 10년 넘게 찾던 사진을 마침내 발굴했습니다. 그게 누구냐. 젊은 세대는 알지 몰라도 나이든 사람들은 누구나 전설처럼 기억하고 있는 여배우 우인희 사진입니다.

우인희는 1980년에 평양시 외곽에서 남편과 두 딸 등 가족이 맨 앞에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수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비참하게 공개총살당한 비운의 여배우입니다. 북한은 우인희 얼굴을 역사에서 완전히 묻어 버렸습니다.

우인희에 대해 여러분들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 간단히 말씀드리면, 그는 1970년대를 주름잡던 여배우였습니다. 나이든 분들은 지금도 우인희만한 미모의 배우가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 우인희가 1980년 2월 일본 조총련 거부의 아들이자 귀국해 당시 조선중앙방송 기술부장을 하던 주정기와 평양 상아파트 주차장 승용차에서 정신을 잃은 채로 발견됐죠.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누었는데, 히터를 틀다보니 배기가스가 새서 남자는 죽고, 여자는 병원에 실려 갔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우인희를 며칠 뒤에 문화예술 관계자 등 수천 명 다 끌어내서 갑자기 공개 총살시켰습니다. 제일 앞자리에 우인희의 남편이자 당대 최고의 연출가인 류호선을 앉히고, 두 딸도 앉혀놓았죠.

7명이 나와 자동보총으로 쏴서 죽이곤 시신을 싣고 갔는데, 류호선은 처형 장면을 맨 앞에서 참관시킨 것도 모자라 처형 이후에 반성문 쓰고 토론시켰는데, 그가 “잘 죽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는 두 딸과 청진제철소에 내려가 2년 정도 혁명화하다가 복귀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북한은 우인희의 기록을 말살했습니다. 그가 나온 모든 잡지, 출판물에서 얼굴이 도려내졌고, 심지어 그가 출연했던 수십 편의 영화들까지 여주인공을 바꾸어 모두 다시 찍게 했습니다. ‘한 지대장 이야기’ ‘춘향전’ 등이 대표적 영화인데, 한 지대장의 이야기는 홍영희가 대신 출연했죠.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에도 검열단이 와서 달력과 화보에서 우인희 얼굴을 찢어갔다고 합니다. 북한만 가능한 짓이죠. 그래서 우인희 얼굴은 유감스럽게 북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우인희 얼굴을 찾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자라면서 우인희가 워낙 당대를 주름잡던 미모의 여배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지만 얼굴 본 기억은 없고, 도대체 어떤 배우이길래 북한이 저렇게 얼굴마저 완전히 삭제했을까 궁금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여긴 과거의 북한 사진들이나 영상 자료들이 좀 있으니 있을까 해서 10년 넘게 찾았는데 못 찾았습니다. 서울의 국립도서관에 있는 북한자료센터에 가서 과거 북에서 넘어온 도서를 다 찾아봤는데도 못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찾던 우인희 사진을 얼마 전에 드디어 찾았는데, 일본에서 찾았습니다. 사진이 딱 두 장인데, 하나는 춘향전에 출연했을 때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유격대 옷을 입고 진달래를 안고 있는 사진인데, 어느 영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진 설명에 우인희라고 일본어로 적혀 있었는데, 이 사진을 북에서 예술분야에 있다 오신 나이 드신 분들께 물어보니 우인희가 확실히 맞다고 합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비운의 인물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이 사진은 우리가 잘 아는 북한에 납치됐다 탈출한 신상옥 감독이 1988년에 일본에서 출판한 ‘김정일 왕국’이란 책에 실려 있었습니다. 신상옥 감독이 어떻게 이 사진을 입수해 갖고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지금은 세상을 떠난 신상옥 감독 덕분에 역사에서 영영 사라질 뻔했던 비운의 여배우 우인희 얼굴을 마침내 찾을 수 있었고, 세상에 그의 실체를 공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북한 인민들만 보지 못할 뿐입니다.

김정일이 그렇게 역사에서 완전히 지우려던 얼굴을 찾았으니, 제가 이긴 셈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그게 궁금합니다. 김정일이 죽이라고 지시해 죽였다는 것은 북에서도 다 알지만, 단순히 바람을 피운 여배우를 왜 그렇게도 잔악하게 처형했을까요? 이에 대해선 여러 해석들이 많습니다.

그럴듯한 소문은 김정일이 자기와 잔 우인희가 딴 남자와 잔 것이 화가 나서 죽였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문화예술부분을 지도한다며 성혜림이 뺏어 살고, 고용희는 물론 당대의 숱한 여자들을 건드린 김정일이 최고 미모의 여배우를 안 건드렸겠습니까. 게다가 우인희가 불륜사건 조사과정에서 “장군님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는 말도 돌았습니다. 자기와 관계가 드러날까 봐 입을 막느라 죽였다고 북에선 쉬쉬했죠.

우인희 집이 모란봉구역 아파트였는데, 그 집에 가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가 다녀간 집’이라고 팻말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왜 또 여배우의 집에까지 다녀간 것일까요. 그 해답은 금수산에 누워있는 본인들만 알겠지요.

아무튼 저는 김 씨 독재자들이 그렇게도 감추고 싶어 한 비운의 여배우의 사진을 찾는데 성공했고, 나중에 북한 독재정권이 무너지면 북한 주민들도 우인희의 얼굴을 비로소 볼 수 있을 것이란 것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날이 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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