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서울살이] 남한 민족, 북한 민족, 간부 민족

사랑하는 북녘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밥에 진심인 민족이었습니다. 인사도 “밥 먹었나” “밥 먹고 다니느냐” 이렇게 하고, 멀리 있는 자식에겐 “밥 잘 챙겨먹어라” 당부했습니다. ‘식구’란 말도 밥을 같이 먹는 사이란 뜻입니다.

오늘 왜 이렇게 밥 이야기를 하느냐면, 한국 사람들은 이젠 ‘밥보다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로 바뀌었는데, 북한은 ‘쌀보단 풀 먹는 사람들’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나면 아예 민족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1년에 고기를 65㎏ 먹고, 쌀은 그보다 10kg이 적은 55㎏ 정도 먹고 있다고 합니다. 이중 가장 많이 먹는 3대 육류가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입니다. 지난해 한국인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9.6kg이었고, 닭고기 15.2㎏, 소고기 14.9㎏이었습니다. 돼지고기를 두 번 먹을 때, 소고기와 닭고기를 한 번씩 먹었다 이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밥과 고기만 먹는 건 아닙니다.

수산물 소비량도 세계 상위권인데, 대략 1인당 1년에 65㎏을 소비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설탕도 1년에 25㎏, 식용유도 20㎏을 소비합니다.

그밖에 쌀 외에 밀가루도 1인당 36㎏ 정도 먹고, 채소와 과일 소비량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상점에 가면 사철 내내 신선한 과일과 채소들이 있습니다.

술도 많이 마십니다. 작년 1인당 평균 주정 20도에 360ml 용량 병으로 환산하면 120병이나 마셨습니다. 통계엔 아이와 여성 등도 다 포함된 터라 건강한 남성은 거의 매일 한 병씩 술을 마십니다.

어떻습니까. 말로만 들어도 정말 풍요의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북한 사람들이 와서 한국인의 식탁을 보면 정말 놀랄 것입니다.

한 끼에 먹는 양이 북한의 절반도 안 됩니다. “저걸 먹고 영양실조가 와야 하는데 왜 여기 사람들은 모두 살쪘지?”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한국인의 밥공기를 보면 눈이 튀어나올 겁니다. 북한에서 군대나 대학에서 쓰는 알루미늄 공기의 반의 반 정도 크기입니다. 이런 공기는 아무리 가득 담았다고 해도 북한에서 제일 양을 적게 주는 기숙사 밥보다 적을 겁니다.

요즘엔 밥공기에 밥을 수평으로 밀어서 담는데, 그걸 절반만 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북한 기준으로 딱 세 숟가락입니다.

이렇게 밥을 먹지 않아도 육류, 설탕, 식용유 등이 풍만한 식단으로 살면 배에 기름이 지고, 허기가 차지 않습니다.

배고프면 언제나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식사 시간을 맞추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지도 않습니다. 제가 일하는 부서에도 냉장고에 각종 과자와 빵 이런 간식이 가득합니다. 저는 오후 4시쯤에 살짝 배가 고플까 하면 맥반석이란 돌에 구운 계란 한두 개를 먹습니다.

한국 음식점 동계올림픽 경기장 맞은편의 한 한국 음식점에서 남성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한국 음식점 2018년 2월, 동계올림픽 경기장 맞은편의 한 한국 음식점에서 남성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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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정말 적게 먹는 것 같지만, 실은 엄청 먹습니다.

먹는 것을 무게로 측정하지 않고, 칼로리를 총합으로 하면 한국인의 1인당 하루 칼로리 소비량이 3,420kcal나 됩니다. 칼로리 소비량으로 따지면 아시아에서 1등일 겁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최소 칼로리는 1,800kcal 정도로 봅니다. 이건 운동을 거의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칼로리고, 일반적으로 30~40대 남성은 2,400kcal가 필요하고, 여성이나 노인, 아이는 그보다 적게 필요합니다.

한국 중년 남성은 2,400kcal가 필요한데 하루 3,400kcal를 먹으니 열심히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비만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서울엔 배나 온 남성이 태반입니다.

그런데 북한 남성은 2,400kcal가 필요한데 그걸 채우지 못하니 삐쩍 마른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필요한 칼로리의 절대 다수를 밥으로 채우려 합니다. 그러니 밥을 엄청 많이 먹어야 합니다. 물론 쌀밥이 아니고 옥수수밥이거나 감자밥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을 잘 모르는 한국의 어린이가 북한에 가서 식사 시간을 보면, 여긴 대식가의 나라인가 할 수도 있습니다. 양강도에 가서 감자밥을 보면 까무러칠 지도 모릅니다. 저도 양강도 사람들이 감자에 옥수수를 약간 섞은 밥이라 할 수 없는 밥을 한 냄비씩 먹는 것을 보고 놀랐으니까요. 그 정도 양은 한국 학생들이 1주일은 먹어야 하는 양인데, 그걸 한 끼에 먹습니다. 실은 감자가 칼로리가 적어서 그렇게 먹어도 밖에 나가서 일하고 돌아오면 늘 배가 고픈데 말입니다.

북한 사람만 그런 것은 아니고, 한 세기 전에 사진에 찍힌 한국인의 밥상을 봐도 밥공기가 큰 냄비만합니다. 오직 곡물과 채소에서 칼로리를 충당하다보니 그 정도로 많이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식량도 귀하니 칼로리가 부족하면 채소나 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더욱 많이 먹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식충인 것은 아니죠.

탈북민들도 한국에 와서 1년만 있으면 밥을 몇 숟가락만 먹게 됩니다. 반면 한국 사람이 북한에 가면 몇 달 안에 밥을 냄비로 먹을 겁니다. 그런데 탈북민은 한국에 적응이 돼도 한국 사람들은 밥과 풀만 먹는 삶에 적응되지 않을 겁니다. 고기와 기름으로 쉽게 칼로리를 충당하던 신체가 옥수수와 거친 풀에서 칼로리를 짜낼 수 있을까요. 위가 적응되지 않을 겁니다. 즉, 이젠 한국인과 북한인의 신체는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물론 북한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북한에서 제일 몸이 많이 난 김정은처럼 되려면 하루에 5,000kcal쯤 먹고, 30분 미만으로 걸어 다니면 됩니다. 북한에서 간부들은 대체로 살이 쪘는데, 그래서 간부와 백성은 몸만 봐도 구별됩니다.

분단은 남과 북 사이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도 신체적 분단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백년 뒤 후손들은 지금을 남한 민족, 북한 민족, 간부 민족 이렇게 세 민족이 살던 시대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