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많은 대통령들 중에서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만큼 바쁘게 정상외교를 펼치고 있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부터 정상외교를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해 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3개월만인 2013년 5월, 4박 5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정상외교의 첫 시동을 걸었는데,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동포간담회, 창조경제리더 간담회 등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2013년 9월에는 7박 8일간 러시아와 베트남을 순방했는데, 러시아에서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이어서 베트남의 호치민시를 방문하여 한국기업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지원을 당부하는 세일즈 외교를 펼쳤습니다. 현재 호치민시에는 1800여 개의 한국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8만 5천 명의 한국교민이 살고 있습니다. 또한, 10월에는 인도네시아와 브루나이를 방문하여 경제협력 관계를 재확인했고, 11월에는 6박 8일의 일정으로 서유럽을 방문하여 프랑스, 영국, 벨기에, 유럽연합 등을 차례로 순방하면서 이 지역국가들과 한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재확인하는 정상외교를 펼쳤습니다.
박 대통령의 정상외교 행보는 2014년에도 이어졌습니다. 1월에는 인도와 스위스를 방문하여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스위스의 지도자들 및 경제인들과 만나 한-스위스 경제협력을 강화했습니다. 이어서 박 대통령은 세계 경제지도자들의 모임인 제44차 다보스포럼에 참석하여 기조연설을 했습니다. 2014년 3월에는 네덜란드와 독일을 순방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한-네덜란드 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헤이그에서 열린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공감대를 호소했습니다.
당시 핵안보정상회의 개막식에서는 네덜란드 수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박근혜 대통령 등 세 사람이 기조연설에 나섰는데 두 사람이 한국인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주선한 한미일 정상 간의 만남도 이루어졌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어서 동독지역을 대표하는 도시인 드레스덴을 방문했는데, 드레스덴 공대에서 명예법학박사를 수여받고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선언을 통해 박 대통령은 남북상생을 위한 3대 제안을 제시했습니다.
2014년 6월에는 자원외교를 위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 아시아 3개국을 순방하여 정상외교를 펼쳤으며, 9월에는 캐나다를 국빈 방문하여 한-캐나다 FTA에 서명하고 에너지 기술 및 북극연구 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을 다짐받았으며, 이어서 뉴욕으로 날아가 제69차 유엔총회에서 테러리즘의 근절을 위한 국제적 협력과 안보리 결정사항의 이행을 호소하여 국제사회의 호응을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2014년 10월에는 이태리의 밀라노를 방문하여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안보를 위한 책임 있는 파트너쉽”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0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했는데, 이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유라시아이니셔티브의 첫걸음으로 아시아-유럽 간의 초고속 정보통신망 구축, 아시아 및 유럽의 젊은 지도자 양성, 교통물류네트워크 심포지엄 개최 등을 제안했습니다. 11월에는 뉴질랜드로 가서 존 필립 키 수상과 정상회담을 가지고 2009년부터 협상해오던 한-뉴질랜드 FTA를 타결했으며, 그리고는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열린 제9차 G-20 정상회의 참석하여 자국중심적 통화정책이 가져오는 국제적 위험성을 지적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발걸음은 2015년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3월에는 자원외교를 위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중동 4개국을 순방했고, 9월에는 중국의 70주년 전승절에 참석하여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과 리커창 총리와의 경제회담을 가졌으며,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 참가, 동포오찬회, 한중 비즈니스 포럼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10월에는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다시 뉴욕으로 가서 제70차 유엔총회 및 유엔개발정상회의에 참석하여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새마을 운동의 전 지구적 확산을 호소했는데, 박 대통령은 뉴욕에서 돌아오자마자 15일에 다시 워싱턴을 방문하여, 임기 중 두번째 한미 정상회담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 회담을 통해 한미 양국은 “21세기 포괄적 전략동맹”이라는 동맹의 발전방향에 합의하고 동맹의 건강성을 재확인했습니다. 박 대통령 역시 한국전참전기념공원을 방문하고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을 직접 격려하는 등 동맹정신을 재확인하는데 많은 노력을 할애했습니다.
북한의 핵포기를 촉구하는 별개의 공동성명이 발표된 점은 매우 특이했습니다. 2015년 11월 초에는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한중일 3국은 전세계 GDP의 1/4을 그리고 전세계 교역량의 1/5을 차지하는 경제강국들로서 2008년부터 3국간 정상회담을 개최해왔지만, 과거사 문제, 영토갈등 등으로 인하여 2012년부터 회담이 열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3국 정상이 다시 만남으로써 협력을 위한 대화를 이어가게 된 것이며, 북한 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데에는 3국이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렇듯 박근혜 대통령은 세계 제14위의 경제강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취임 이후 정상외교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왔고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는 여섯 번이나 만났습니다. 여기에 비해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는 2012년 집권 이후 단 한번도 중국과 정상회담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에만 머물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남과 북 모두가 개방적인 자세로 국제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날이 조속히 도래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