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유엔에서의 북한인권 아젠다

김태우·동국대 석좌교수/건양대 초빙교수
2014.11.26

북한의 인권문제가 또다시 국제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11월 18일 유엔 제3위원회가 유럽연합 등 60개 국이 공동 제안한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입니다. 찬성 111표, 반대 19표, 기권 55표 등에서 보듯 결의안은 압도적인 지지로 채택되었는데,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중국, 러시아, 쿠바, 시리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이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결의안의 내용이 전례없이 강경하다는 사실입니다. 유엔은 2005년 이래 매년 대북 인권결의안을 채택해오고 있지만, 이번에는 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인권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여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으며, 이와 함께 유엔 안보리에게 책임자들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한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11월 18일 최명남 외무성 부국장은 결의안 채택을 ‘반공화국 음모’로 규정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핵실험을 자제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고 협박했으며, 20일에도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전쟁 억제력을 무제한적으로 강화할 것”이라면서 핵실험 재개를 시사했습니다.

23일에는 국방위원회가 공갈협박이나 다름없는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이 성명은 “미국과 그 하수인들이 유엔무대를 악용하여 조작해낸 인권결의안을 전면 거부·배격한다”고 천명했고,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미국, 일본, 한국 등에게 말폭탄을 쏟아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박근혜 패당도 초강경 대응전의 기본 대상”이라고 지목하면서 “핵전쟁이 터지면 청와대는 안전하겠는가”라며 막말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외교적 대응에 있어서도 예년과 달리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 이래 3년이 지나도록 중국과 정상회담을 열지 못하고 있는 북한은 유엔의 인권 표결이 이루어질 무렵 최룡해 노동당 비서를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에 보내 북·러 정상회담을 타진하고 경제협력을 촉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반대표를 던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감사도 표했습니다. 때문에 북한의 대러시아 외교의 저변에는 국제사회의 인권압박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요청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연일 핵실험을 운위하는 것을 보면 유엔의 인권압박에 대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제에 핵실험 재개를 위한 명분도 축적하겠다는 계산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것 자체는 쉽지 않습니다. 유엔 제3위원회에 이어 유엔총회 또한 동 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지만, 북한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유엔안보리의 합의가 필요한데, 반대표를 던진 중국과 러시아가 비토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기 때문에 안보리 통과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인권문제가 유엔의 단골의제로 등장한 사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며, 인권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진정한 일원이 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대해 핵실험을 위협하면서 막말을 쏟아내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터무니없고 황당하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북한이 이 문제에 대처하는 가장 올바르고 간단한 방법은 인권개선을 위해 성의를 보이는 일입니다.

국제사회는 금년 2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 체계적이고(systematic) 광범위하며(widespread) 중대한(grave)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고문, 공개처형, 강제구금, 정치종교적 박해, 굶주림 등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고, 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인민군, 검찰소, 재판소 등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요구를 무작정 거부할 것이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은 임의적인 처벌이나 인권침해가 없도록 노력하는 것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출발점일 것입니다. 경우가 이러함에도 핵실험을 위협하고 인권개선을 촉구하는 나라들에게 험담이나 쏟아내는 것은 외교적 결례이기도 하지만 북한 스스로에게 더 깊은 고립을 가져올 뿐입니다.

북한이 진정 경제재건을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면 현재의 지독한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권개선을 위한 진정성이 담긴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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