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을사년 세계와 한반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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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60년 주기로 돌아가는 동양식 육십갑자에서 을사년은 42번째 해입니다. 육십갑자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로 이루어진 10개의‘천간(天干)’과 12가지 동물을 상징하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라는 12개의 ‘지지(地支)’가 짝을 이루면서 만들어지는 조합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올해는 청색을 뜻하는 ‘을’과 뱀을 의미하는 ‘사’가 더해진 ‘푸른 뱀의 해’입니다. 한꺼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새끼들을 키우는 뱀은 다산과 생명 그리고 창조를 상징하는 동물이며 허물을 벗는 특성 때문에 재생, 영생, 치유 등의 의미도 가진 동물입니다. 뱀의 좋은 기운을 받아 올해에는 남과 북 모두에서 풍요로움과 선한 창조가 많이 일어나기를 기원해 봅니다.

하지만 지난 역사에서 보면 을사년에는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을사년이라고 하면 조선왕조 때인 1545년 당파싸움으로 많은 선비들이 죽음을 당한 을사사화, 1605년 낙동강 대홍수, 1665년 경기 지방 대흉년 등을 거론하며, 최근의 역사로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을 떠올립니다. 특히, 1905년 을사년에는 나쁜 일이 많았습니다.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여세를 몰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외교사절 파견을 금지합니다. 이에 항의하여 11월 20일 구한말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즉 “이 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고, 11월 30일 고종 황제의 시종무관장 민영환은‘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2025년 을사년에는 부디 나쁜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하지만 새해에도 세계와 한반도의 안보정세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국제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 진행 중입니다. 곧 취임할 미국의 제2기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을 장담하면서 온 세계는 신속한 종전을 기대했지만, 양측이 종전 이전에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와중에 북한군의 교전 소식도 들리고 있습니다. 러시아 군복을 입고 쿠르스크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과 싸우는 북한군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은 물론 한국 국민에게도 매우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어쨌든 북한군의 파병은 전쟁의 조기 종전을 저해하는 국제적 악재가 되고 있습니다.

중동사태는 더욱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란은 재작년 10월 대리세력인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압박했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의 결사항전을 촉발하여 궁지에 몰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기회에 후환까지 제거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12월 이란과 러시아가 지원하던 시리아의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반군에 패하여 무너졌고, 이란이 구축해온 ‘저항의 축’ 즉 반미와 반이스라엘을 위해 구축해온 시아파 벨트가 무너지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시리아 반군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각 반군세력이 튀르키예, 미국, 러시아, 이란 등 서로 다른 외부 세력의 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에 올해도 국제관계와 연계된 내란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한반도 안보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작년 1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0차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민족, 통일, 화해 등의 표현을 삭제하고 남북한을 ‘교전 중인 적대국가’로 표기하고 새로운 ‘국경 조항’을 삽입하는 개헌을 지시한 이래, 북한은 작년 한 해 동안 통일 관련 흔적을 지우느라 바빴습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통일전선부 등 대남기구들을 해체하거나 개칭했으며, 북한 애국가 가사에서 ‘삼천리’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평양 지하철에 있는 ‘통일역’의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심지어 개성공단에 전력을 보내주었던 송전선도 잘라버렸습니다. 선대 지우기와 김정은 위원장 우상화도 진행시켰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 서린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고, 태양절도 ‘4월 명절’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대한민국을 적대시하고 선대유훈까지 청산하는 것이 남북관계나 평양 정권의 안정에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북한은 작년 한 해 동안에도 20여 회에 걸쳐 약 70발의 각종 발사체를 쏘았으며, 6천여 개의 쓰레기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보냈습니다. 을사년에도 이런 일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을사년의 한반도 안보 전망도 밝지 못합니다. 북한 인민과 한국 국민의 절대 다수가 남북이 협력하면서 함께 잘 살기를 원하는데 안보 정세는 반대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