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3일 북한의 노동신문이 김정은 위원장의 핵무기연구소와 농축시설 방문을 보도하고 사진을 공개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습니다. 제1세대 핵무기인 분열핵폭탄에는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이 있는데, 농축이란 우라늄탄의 원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는 공정이며, 가장 통상적인 농축 방법은 원심분리법입니다. 우라늄에는 우라늄-234, 235, 238 등 세 가지 동위원소가 들어 있는데, 이중 99% 이상이 우라늄-238이며 핵연료 및 핵무기용으로 쓰이는 우라늄-235는 0.7%뿐입니다. 그래서 우라늄을 기체로 만들어 원심분리기라고 부르는 원통형 실린더에 넣고 고속으로 돌리면 원심력에 의해서 가장 무거운 우라늄-238은 바깥쪽으로 쏠리게 되는데, 중앙 부분의 우라늄을 추출하여 다른 실린더로 보내서 또다시 돌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우라늄-235의 농도가 짙어집니다. 그것이 농축이며 농축도가 90%가 넘으면 폭탄용 핵분열 물질이 됩니다. 북한은 2010년에 미국의 헤커(Siegfried S. Hecker) 박사를 초빙하여 영변 농축시설을 방문하게 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내부시설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양 남서쪽 강선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농축시설 내부를 사진으로 공개하고 자체 기술로 새로운 원심분리기를 생산하고 있다고 과시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사일 발사, 대남 쓰레기 풍선 도발, 러시아에 대한 무기탄약 불법 수출 등 위험한 행보로 주목을 받고 있는 북한이 보란듯이 농축시설을 공개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거론하는 배경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입니다. 미국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대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고 북한이 몸값을 높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북한은 미국에게 더 이상 핵포기를 요구하지도 거론하지도 말고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핵국 대 핵국’으로 대등하게 협상도 하고 제재도 풀어보겠다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2022년 12월 당 중앙위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핵탄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강”을 천명했고, 2023년 12월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도 ‘핵물질 추출 및 핵탄두 양산체계 확보’를 핵무기 부문의 2024년도 수행과업으로 강조했으며, 금년의 제76주년 9.9절 연설에서도 무기급 핵물질 생산토대를 한층 더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원자로 가동 후 폐연료봉을 꺼내서 재처리라고 하는 화학처리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우라늄 고농축은 비교적 단순한 공정이어서 핵무기 대량생산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북한은 핵폭탄 대량생산 능력을 과시하면서 “우리를 비핵화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라는 대미 메시지를 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두 번째 배경은 대남 메시지입니다. 북한은 이어지는 엘리트 탈북, 휴전선 군인들의 탈북, 세습독재 체제에 대한 ‘장마당 세대’의 회의론과 자유를 향한 열망 표출, 잘사는 기회의 나라 남한에 대한 동경 확산 등으로 심각한 체제불안증을 앓고 있으며, 한류와 K-pop을 차단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북한이 경제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대한민국을 제압하기 위해 대남 핵위협을 강화하면서 전술핵 증강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농축시설 공개는 휴전선에 지뢰밭과 전기 철조망을 깔고 있는 것, 갑자기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재규정하고 남북교류나 통일이라는 개념을 삭제한 것, 사상 단속을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보장교양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한 것 등과 같은 맥락의 일입니다.
북한의 농축 활동과 관련해서는 이 말고도 생각해볼 점들이 있습니다. 북한은 자체 연구개발 능력으로 원심분리기를 제작했다고 자랑하지만, 파키스탄으로부터 기술을 제공받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2004년 4월 23일자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파키스탄에는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Abdul Quadeer Khan) 박사가 운영하는 ‘칸연구소’가 핵무기 및 농축기술 개발을 주도했었는데, 이 연구소를 통해 P-1 및 P-2형 원심분리기와 농축시설 운영 노하우를 북한에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실제로 칸 박사가 북한을 수 차례 방문했던 사실이나 파키스탄의 군용 수송기가 평양을 드나든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북한이 과연 자체 기술로 농축시설을 건설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맞는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북한이 엄청난 재원과 자원을 투자하면서 농축시설을 확대하는 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현재 철도, 도로, 수도공급, 전기 공급 등 주민의 삶을 위한 북한의 인프라는 세계 최악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집집마다 24시간 전기가 공급되고 온수와 냉수가 공급되는 것만 보고도 충격을 받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핵무기를 만들고 핵무기 생산토대를 확장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 북한 주민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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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