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증산돌격운동

김현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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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북한의 중심 과업은 경제입니다. 공화국창건 70돌을 맞으며 자랑할 업적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시기에는 핵실험, 미사일 개발성과로 명절을 기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핵 미사일개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제적 성과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현재 북한의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북한지도부는 현재의 난국을 뚫기 위한 방도로 대중운동을 벌이자고 호소했습니다. 며칠 전 2.8직동탄광과 남사협동농장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목표수행을 위한 증산돌격운동 궐기모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전국의 모든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에서 궐기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경제적 상황이 어려울 때마다 증산돌격운동을 호소해서 대중동원의 방법으로 난국을 타개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1947년에 증산돌격운동이 시작되었고 1950년대 말에는 천리마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70년대 김정일이 등장하면서 70일 전투가 진행되었고 이후 100일전투 200일전투 등 많은 전투를 벌렸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의 어려운 고비가 지나자 다시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많은 증산운동 중에서 성과를 거둔 것은 해방 후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한 증산돌격운동과 1950년말 전개된 천리마운동입니다. 천리마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추억에 의하면 그 때는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벽돌을 지고 걷는 것이 성차지 않아 뛰어다녔고 힘든 속에서도 휴식시간이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느냐고 물으니 그 때는 열심히 일한 것만큼 생활이 개선되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주택이 토굴 집에서 단층집으로 단층집에서 아파트로 바뀌었고 먹고 입고 쓰는 것이 날이 갈수록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일했습니다.

그러나 대중운동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피로를 가져옵니다. 천리마운동도 초기에는 성공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시들해졌습니다. 천리마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때는 사람들이 고지식하고 순진했습니다. 당시는 당의유일사상체계가 수립되기 이전이어서 자율성도 일정 정도 보장되었습니다. 또한 전후 복구건설을 돕기 위한 사회주의나라들의 지원으로 원료 자재가 보장되어 물질적 조건도 비교적 좋았습니다.

북한당국은 김정일 시대의 성공적인 증산운동으로 70일 전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70일 전투는 외면상으로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실제로는 계획수행에 급급한 나머지 그 이후를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전투를 벌렸고 결과 그 다음해부터 경제가 더욱 침체에 빠졌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도 많은 생산돌격운동이 진행되었으나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당의유일사상체계의 수립으로 사회는 더욱 경직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생산을 다그칠 수 있는 물질적 준비도 부족했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는 경제가 다 멎다 보니 대중운동을 전개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시 대중운동이 시작된 것은 2009년부터 입니다. 당시 150일전투 이어 100일전투를 벌렸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김정은 등장 이후에도 70일 전투, 만리마운동 등을 전개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 진행하는 증산돌격운동 역시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가동을 멈춘 공장, 기업소에서 증산돌격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가동하는 공장이라고 해도 사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원료와 자재, 전기입니다. 이것만 보장되면 돌격운동을 벌이지 않아도 생산을 늘릴 수 있습니다.

이번 증산돌격운동은 성과도 내지 못하면서 주민들의 세외부담과 사회적 동원만 늘게 할 것입니다. 지금 북한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증산돌격운동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핵 포기를 통해 대북경제제재에서 벗어나야 하며 개혁개방정책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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