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퇴비생산 전투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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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그러하듯이 올해도 북한 주민들은 퇴비 전투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올해는 예년보다 퇴비생산 계획이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당 제8차 대회에서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제시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퇴비 생산 계획도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례 없는 한파가 들이닥친 속에서 추위에 떨면서 퇴비생산과제를 하느라 들볶이는 북한 주민들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세계에는 다양한 나라가 있지만 퇴비를 바칠 것을 요구하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주민들을 농사철에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서 정초부터 퇴비 과제를 주고 그 집행을 독촉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퇴비 생산 과제가 없었습니다. 비료는 공장에서 생산했고 부족한 양은 수입해서 공급했습니다. 비료는 쓰고 남을만큼 많았고 흔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어느 해에 한여름에 비료가 부족하니 인분을 말려서 바치라는 과제가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더러웠고 끔찍했지만 어려운 나라 사정을 생각해서 참고 집행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해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 해, 그 다음 해로 이어지더니 아예 새해 퇴비 생산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에는 나라에서 배급을 주니 퇴비를 바쳐야 한다는 말에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배급을 주지 않는 오늘에는 늘 해오던 것이니 당연한 것으로 되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 도시에서 퇴비 생산의 원천은 인분 밖에 없습니다. 서방에서는 인분을 퇴비로 이용하는 나라를 미개한 나라로 취급하지만 사실 인분을 퇴비로 이용하는 것은 친환경적인 오·폐수 처리방법이므로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분을 이용하는 과정에 도시환경이 파괴되고 농작물이 기생충에 오염되어 사람들을 감염시키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분 처리 과정에서 제정된 기술적 요구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분은 밀폐된 통에 수집해서 운반해야 하고 충분히 썩혀서 밭에 내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주민들이 각기 알아서 인분을 퍼 나르다 보니 퇴비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도시 전체가 오염됩니다. 그리고 인분을 썩히는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논밭에 내다보니 북한 주민들 속에서 기생충병이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퇴비 생산에 사람들을 동원하는 방법도 문제입니다. 노동 생산 능률을 높이려면 분야별로 전문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문화되면 같은 힘을 들이고도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전문분야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퇴비 생산에 동원하고 있습니다. 최근 시장의 발전으로 북한에서 퇴비 생산도 점차 전문화되고 있습니다. 새해가 오면 전문적으로 비료를 생산해서 파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퇴비를 사서 바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입니다. 지금은 퇴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것을 개인들이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이 퇴비를 생산해야 합니다.

온 나라 주민을 동원하고 있지만 퇴비 생산이 실제로 알곡 증산에 얼마나 도움으로 되는지는 의문입니다. 집행 불가능한 과제를 주다 보니 퇴비 도둑이 생기는가 하면 담당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영수증을 발급받거나 흙이나 타고 남은 재만 섞어서 퇴비로 인정받는 등의 행태가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 남한에서 퇴비를 협동농장 논밭에까지 실어다 주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한은 축산업이 발전해서 퇴비가 남아돌아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남한은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있고 북한은 부족한 퇴비를 보충해서 알곡 생산을 늘릴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제안을 받아 들였다면 새해 퇴비생산 전투는 안해도 되었을텐데 정말 아쉽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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