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왕의 역사, 수령의 역사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021.04.12

북한에서는 4 15일을 민족최대의 명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일성을 사회주의조선의 시조라고 합니다. 김일성의 생일을 기준으로 매긴 주체 년호도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김일성혁명역사를 유치원때부터 소, 중, 고,학은 물론 대학졸업 후에도 지속해서 학습시키고 있습니다.

북한지도부는 주체사상은 역사의 본질을 사람을 중심으로 새롭게 밝혔다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는 인류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았지만 주체사상은 인류역사는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의 역사라고 정의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기간 역사 서술은 인민대중이 아니라 왕을 중심으로 서술되었으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인민대중의 투쟁을 중심으로 새로운 역사를 서술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북한주민들은 남한주민들과 달리 우리나라에 존재해왔던 왕의 이름을 잘 모릅니다. 지어 남한주민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대로 북한주민들은 수령의 역사를 잘 압니다. 대동강에서 제네럴 셔먼호를 물리치는 데서 지도적 역할을 했다고 하는 김일성의 중조할아버지 김응우로부터 시작된 가계를 잘 알 뿐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 지어 김정은의 역사까지 통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참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왕을 중심으로 편찬했던 이전 역사나 수령을 중심으로 편찬한 북한의 현대사나, 본질에 있어서 최고 통치자 중심으로 역사를 편찬했다는 점에서 같고 같아진 것입니다.

왕을 중심으로 역사를 편찬한 우리나라의 이조시기 역사 기록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단한 역사 기록입니다. 남한에서는 조선왕조실록으로 불리는 이조 실록은 사관들이 왕의 일거일동과 국내에서 일어난 일들을 세세하게 적어서 편찬한 역사책으로, 그 내용의 방대함에 있어서 세계 최고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역사 기록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세운 질서는 오늘에 와서 보아도 놀랄 정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전문 관리로 사관이 있었습니다. 사관들은 매일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초를 만들었습니다. 사초는 누구도 볼 수 없는 절대 비밀에 속했습니다. 왕도 사관들이 적은 자신에 대한 기록을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실록은 반드시 왕이 사망한 후에 편찬했습니다. 역사를 지우거나 위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왕도 사관을 두려워했습니다.

이조 실록에 인민들의 역사가 많이 기록되지 못했다고 지적되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 기록에서 공정성의 원칙이 있었고 그것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수령 중심 역사 기록에는 이러한 원칙이 없습니다. 수령을 칭송할 수만 있다면 없던 일도 있다고 하고 있던 것도 없다고 만듭니다. 해방 후 김일성의 연설문에서 소련과 스탈린을 조선의 해방자로 칭송했던 문장을 삭제하고 북한이 먼저 6.25전쟁을 일으키고도 미국과 남한이 먼저 침공했다고 하는 등 역사를 고치는 것을 조금도 꺼리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의 봉건시대보다 북한의 역사 기록이 훨씬 뒤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북한지도부가 주장한 인민대중의 투쟁의 역사라는 규정이 북한지도부에 부메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황해도 일대에서 도적패 출신이지만 봉건 통치배들을 반대해서 활동했다고 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임꺽정의 활동을 북한지도부가 오늘에 와서는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 북한지도부는 주민들이 즐겨보던 임꺽정 영화를 상영 금지시키고 주제가도 부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 북한체제가 봉건 왕조와 별로 다르지 않고 민심이 봉건시대 왕권에 저항하던 농민들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지도부자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령이영도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왕이 통치한 이씨 조선의 차이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4월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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