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한에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논의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남한 내 시민단체들은 연합하여 국제 형사 재판소에 북한의 인권 실태 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2월 22일에는 국내 최대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가 제1회 인권·환경대회를 열고 김정일 등 북한 지도자들을 국제 형사 재판소에 회부하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국제 형사 재판소는 집단 살해죄, 반인도 범죄, 전쟁범죄 및 침략범죄를 재판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반인도 범죄는 고문이나 살해, 강간, 강제 구금·이동, 납치, 노예화 등으로 구성됩니다. 북한에서 가행되고 있는 고문과 공개처형, 강제구금과 강제 추방 같은 행위들은 반인도 범죄에 해당됩니다. 인권운동가들은 고난의 행군시기 수십만의 주민이 굶어죽게 방치한 행위는 집단 살해 죄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제 형사 재판소에 기소할 정도로 북한당국의 인권침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수십만의 주민들이 수용소에서 죽어가고 있고 공개처형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을 고문하는 것쯤은 별것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한주민들의 인권의식입니다. 북한당국은 인민의 원수들을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인권탄압을 정당화하여 왔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인권유린행위를 범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서 받게 되는 응당한 조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주민들을 탄압하는 사람들도 자기의 행위가 국제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되는 반인도적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상황은 히틀러 시기의 독일과 유사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많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낸 나치전범 중의 한명인 아이히만이 오랜 도피생활 끝에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재판과정에 참가하였던 유태인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가 성실한 가장이자 가족을 사랑하고 베토벤을 좋아하는 성실한 공민, 매우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었다고 평을 해서 격렬한 논쟁을 유발했습니다.
아이히만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수많은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면서도 나치와 자신의 행동이 반인간적인 짓이라거나, 악한 행동이라거나 하는 것을 느낀 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충실히 집행했을 따름이며 오히려 명령받은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그러한 가혹한 행위를 집행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죄는 '생각하기를 거부한', 어떤 것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볼 줄 모르는 무능력에 원인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되게 된 것은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신봉 때문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이상을 신봉했고 그 이상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지어 자신의 아버지까지도 죽음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경찰심문에서 진술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 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즉 악은 사악한 성격을 가진 특별한 인간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에 의해 어렵지 않게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에서 주민들을 관리소로 감옥으로 보내고 고문하고 추방하는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는 아이히만처럼 성실하고 가정을 사랑하는 좋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미제>나 <일제> <남조선괴뢰도당>이 아닌 북한의 평범한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 김정일에 대한 충성이라는 사고에 포로 되어 북한주민들을 괴롭히고 죽음에로 몰아가는, 국제 형사 재판소에 기소될 반인륜적 행위를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북한체제이지만 남의 인권을 유린한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도 <나는 체제에 충실했을 뿐 죄가 없다>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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