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북한의 화폐개혁의 책임자였던 당 재정경제부장 박남기의 처형설이 남한의 신문방송을 통해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화폐개혁을 주도했던 그는 1월말 화폐개혁의 실패로 인해 비판을 받고 체포되었으며 2월에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수행하던 그의 모습이 1월 8일 이후로 보이지 않는 점, 최근 방영된 기록영화에서 그의 모습이 삭제된 점도 이러한 보도를 확증해주고 있습니다.
박남기의 처형을 두고 전문가들은 책임 넘겨씌우기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화폐개혁의 결과, 물가가 상승하여 주민생활이 어려워지고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강화되자 그 원인을 박남기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당사자가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을 때 서관히 농업 담당비서를 처형함으로서 수십만의 아사자를 낸 농업파산의 책임을 넘겨씌운 사건을 상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박남기나 서관히는 그릇된 경제 정책을 집행하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이번의 화폐개혁만 보더라도 사회주의 경제를 복구하려는 목적 밑에 실패가 명백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한 것은 박남기의 과오입니다. 그러나 북한체제는 개인이 독자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닙니다. 공적인 것 뿐 아니라 사적인 것 까지도 당에 보고하고 당의 결론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철칙으로 되어 있는 북한 체제에서 화폐개혁과 같은 거사를 개인의 독단으로 했다는 것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박남기의 처형은 북한의 인권상황의 열악함을 다시금 세상에 각인시켰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사형제도 자체가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고 하고 있고 실제로 2008년 기준으로 세계의 95개 나라에서는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했습니다. 그리고 35개 나라는 사형제도의 집행을 허가하는 법을 유지하고 있으나 적어도 지난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9개나라는 중대 범죄에 한해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197개 국가 중에서 139개국이 사형제도를 실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한도 97년 이후 십년 넘게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2007년 12월 30일부터 '실질적 사형폐지국' 국가에 들어섰습니다.
인간의 생명의 귀중함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은 북한 주민들로서는 이해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지위에 있던 사람이 순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북한의 현실을 보고 국제사회가 어떻게 평가하겠는가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박남기의 처형은 권력상층부의 암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화폐개혁의 실패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한 달도 못되어 그가 체포되고 처형된 것은 화폐개혁에 실지로 책임 있는 자들이 책임에서 벗어나고, 화폐개혁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된 간부들이 돈을 잃지 않으려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처형행위를 가능하게 한 것은 비인간적인 북한의 사법제도입니다. 이번에 박남기는 비밀리에 체포되었고 조사, 재판, 사형과정이 비밀리에 급속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일단 정치범으로 낙인 되면 마음대로 체포할 수 있고 고문 처형할 수 있는 북한의 사법제도가 남아있는 한 앞으로도 제2, 제3의 박남기 사건이 계속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박남기는 인간적으로 고지식하고 경제에 밝았다고 합니다. 그가 정말 사회주의 경제를 복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실지로 이번 개혁을 발기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번 개혁으로 인해 손실을 입은 수많은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이번 개혁의 피해자로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일반 주민은 물론이고 죄지은 사람도 절차에 따라 구금하고, 범죄조사과정에서도 인권을 보장하며, 죄인에게 변호의 기회를 주고 공개되고 공정하게 진행되는 재판을 통해서 형벌이 부과되는,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실제적인 사법제도가 북한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모두에게 확인시켰습니다.
0:00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