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북한 건군일의 수난사

김현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2018.02.05

평창올림픽이 당장 열리게 되는 지금 세계의 시선은 북한의 열병식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이 열리기 하루 전인 2월 8일 조선인민군창건 70돌 기념 열병식을 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기념 열병식에는 북한의 최신 정예무기들이 총출동할 것이고 그러면 국제사회가 모두 반대하는 핵미사일도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의 인민군은 1948년 2월 8일에 창건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2월 8일을 건군절로 기념해왔습니다. 그런데 1978년 갑자기 인민군 창건일을 4월 25일로 바꾸었습니다. 정규적 혁명무력인 조선인민군이 창건된 것은 1948년이지만 자기의 진정한 혁명무력을 가지게 된 것은 항일유격대창건 때부터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후계자문제를 둘러싸고 김정일과 이복형제들 간에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김성애가 김일성의 부인이었으므로 김정일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김정일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사망한 어머니 김정숙이 항일빨치산 출신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김정일은 김일성의 항일무장 투쟁사를 부각시키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인민군 창건일도 항일유격대 조직일로 바꾸었습니다. 이후 2월 8일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 2015년 다시 2월 8일이 등장했습니다. 갑자기 2월 8일에 중앙보고대회가 열리고 신문방송에도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에 태어난 김정은이 2월 8일에 대한 추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왜 갑자기 2월 8일을 기념하기 시작하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이유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초 북한이 2월 8일을 맞으며 열병식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1월 22일 인민군 창건일을 2월 8일로 바꾸어 기념한다는 당 중앙 정치국 결정서가 나왔습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의문을 풀 수 있었습니다.  인민군 창건일을 바꾼 것은 남한의 올림픽 때문이었습니다.

남한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해마다 2월초부터 열리곤 하던 키리볼즈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평창올림픽이 끝나는 3월 중순 이후로 미루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건군절 날짜를 변경까지 하면서 열병식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남한 언론과 주민들의 시선은 싸늘해졌습니다. 북한정부는 이에 대해 인민군 창건일을 70년 후에 열리게 될 올림픽 날짜까지 예상하면서 정할 수 없었다고 정당화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왜 4월 25일을 2월 8일로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을 환영한다고 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평창올림픽이 반가울 수만은 없습니다. 원래 북한은 남한에서 1988년 올림픽이 열릴 때도 그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남한이 매우 불안한 나라라는 여론을 조성해서 올림픽 개최를 막으려고 여행객과 승무원 115명의 생명을 빼앗은 대한항공여객기 폭파사건도 강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사회에서 극도로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므로 올림픽을 마냥 반대만 할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그럴 바에는 올림픽을 최대한 이용해보자는 것이 북한의 생각입니다. 올림픽에 선수도 보내고 대표단과 예술단, 응원단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카드는 열병식입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평창올림픽 전야에 열병식을 열고 핵 무력을 시위함으로써 핵 보유의지를 과시하려고 합니다. 동시에 남한으로 향하는 주민들의 민심도 돌리고 자신들의 자존심도 위로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대의’를 위해서라면 인민군 창건일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선대 지도자도 바꾸었는데 김정은이라고 바꾸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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