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김지하의 시와 북한

0:00 / 0:00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5월 8일, 남한의 김지하 시인이 암 투병 중 81세를 일기로 별세하였습니다. 남한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의 별세 소식을 “저항시인”, “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 “민족 예술 1세대의 대선배”, “인간 생명을 재해석한 시인이자 철학자” 등의 평가를 보도 했습니다. 보도한 것처럼 시인 김지하는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던 1970년대 독재정권을 비판한 시를 창작한 저항시인, 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체포된 후 사형을 언도 받고 감옥살이도 한 투사, 인간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한 철학자였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한때 북한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 북한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그를 구금하고 박해한 ‘독재정권의 만행’이 보도되었고 그의 시도 소개되었습니다. 북한주민들이 김지하를 좋아한 것은 북한의 선전도 있었지만 그의 시가 좋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시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군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1970년대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부정부패와 비리를 해학적으로 풍자하였습니다. 당시 남한을 ‘썩고 병든 자본주의’로 인식하고 있던 북한주민들은 남한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시에 공감했습니다. 그는 1975년 감옥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라는 시를 발표하였고 이 시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민주화를 지향하는 남한 주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의 시를 읽어 보노라면 역설적이게도 남한 사회가 아닌 북한 사회가 떠오릅니다. 시인이 비판했던 오적이 ‘북한에서 횡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지도부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인민대중제일주의’ 구호를 내걸고 선전하지만 현실에서는 부정부패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남한에 온 탈북자들을 조사해보면 북한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 1순위는 당 간부, 2순위는 사법 간부, 3순위는 외화벌이 간부입니다. 북한에서 국가가 규정한 월급은 간부 직급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 크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외화벌이 회사를 운영해도 국가가 규정한 대로 월급을 받으면 크게 잘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 간부와 사법기관 간부들, 외화벌이 사장들은 주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삽니다. 그 비결은 뇌물, 부정축재에 있습니다. 김지하 시의 「오적」에 나오는, 말로는 국가를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배만 불리는 국회의원이나 고급공무원, 장차관, 국가법을 어기고 재산을 축적하는 재벌과 북한의 간부와 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당시 암담한 현실에 대한 절규,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폭력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사회현실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잘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오늘 자유가 전혀 없이 숨 막히는 사회의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표현한 시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1970년대의 북한은 자유와 정의가 보장되는 곳이어서 당시 김지하의 시를 찬양했을까? 당시는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보장되고 있어서 지금과 같은 부정부패는 없었지만 당시에도 북한주민들의 자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은 국가의 통제와 함께 배급이 보장되고 있어 자신에게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북한에서는 1974년 김지하를 널리 선전하고 소개했지만 오늘 김지하의 시를 외우는 사람이 있다면 탄압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오늘도 어디서인가 숨죽여 흐느끼며 마음속에 남몰래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쓰는 주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김현아, 에디터 오중석,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