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북한 국방성은 5월 28일부터 남한을 향해 보내던 오물풍선 살포를 중지한다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은 담화에서 휴지 쓰레기 15톤을 3,500여개 풍선에 담아 살포했다고 주장했는데 남한 발표에 의하면 수거된 풍선은 1차 260여 개, 2차 720여 개, 총 1000여 개 입니다. 남한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과 북한 지역에 떨어진 것이 2/3나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오물풍선 살포가 꽤 성공했다고 자축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북한의 오물로 남한주민들의 감정을 자극했고 그 원인을 탈북민의 삐라 살포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이에 대한 반감을 조성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탈북민의 삐라 살포에 오물 살포로 대응한 것은 북한이 지고 들어간 게임입니다. 남북 상호간 삐라게임은 6.25전쟁 때 시작되어 현재까지 지속되어 왔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삐라전쟁에서 북한이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1960~70년대 북한은 당시 발전한 평양의 모습을 부각하고 김일성의 업적을 선전하는 내용을 삐라에 담았습니다. 1970년대 북한이 남한으로 보낸 '월북 장병들에게'라는 제목의 삐라에는 “공화국 공민의 권리와 자유 보장, 직업·직장 알선, 고급주택 무상 배정, 남한 돈으로 생활보장금 1억 1100만 원~3억 3300만 원 지급 한다”고 적혀 있었고 이를 보고 북한으로 넘어간 남한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남한에서는 1980년대까지 북한이 날려 보낸 삐라를 주워서 바치면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2000년 남북 상호비방 중지 합의에 따라 양측의 전단 살포가 공식 중단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남한경찰청이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처리 규칙을 폐지해 학용품 등을 지급하는 포상도 사라졌습니다. 대신 남한에서는 2000년대 이후 민간단체들, 특히 탈북민들이 대북 삐라 살포 전면에 나섰는데 삐라 외에도 컵라면, 1달러 지폐, 소책자 등의 물품도 함께 날려 보냈습니다. 이에 대응해 북한도 대남 삐라 살포를 본격적으로 재개했습니다.
그런데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하늘과 땅처럼 커졌기 때문에 북한당국이 남한에 보낸 삐라는 전혀 효과가 없는 대신 남한에서 보낸 삐라는 북한주민들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너무 컸습니다. 사실 남한이 보낸 삐라 풍선에는 주민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와 필요한 물건이 담겨 있어서 그대로 두면 자발적으로 다 가져갈 것이므로 수거 조치가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삐라가 한 장이라도 주민들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당, 군, 행정을 총동원해서 막아야 했습니다.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 “널려진 휴지장들을 주어 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고 했는데 이는 솔직한 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남한은 사실 기분이 더러워 그렇지 오물풍선 처리가 북한만큼 힘들지 않습니다. 남한의 하루 폐기물 양은 50만 톤이 넘으므로 15톤은 문제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닐 박막이 부족한 북한에서 풍선 3천 개를 만드는 것은 꽤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쓰레기에 들어간 종잇조각이나 천 조각도 북한에서는 귀하게 쓰이는 재생원료인데 아까웠을 것입니다. 담배꽁초는 필터만 남아서, 반쯤 태우고 버리는 남한과 달랐습니다.
이번 북한정부의 대응은 너무 엽기적이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지만 한편 너무 저열한 대응이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정부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데 일조했습니다. 남한정부가 대북방송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는 대응안을 발표한 2일 밤, 북한은 오물풍선 살포를 금지하겠다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오물풍선 살포는 북한당국의 외부정보 유입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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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양성원, 웹팀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