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철폐돼야 할 성분제도와 연좌제
2024.12.02
북한에서 지난해 1월 당·정·군 주요 간부들과 지휘관들에게 ‘연좌제 처벌’ 완화를 암시하는 방침을 하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월 “아버지, 할아버지가 범한 잘못을 가지고 3대, 4대에 거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잘못은 당사자 단계에서 끝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현재 당에 충실한 일꾼들과 주민들에게 아버지, 할아버지의 잘못을 가지고 따지면 결국 우리 스스로가 그들을 적으로 만드는 일이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고 합니다.
북한당국은 오랫동안 출신 배경과 가족 관계,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주민을 '기본 계층, 동요 계층, 적대계층’으로 나누어 통제해 왔습니다. 또한 반국가적 범죄에 대해서는 연좌제를 적용해 왔습니다. 이러한 성분 제도와 연좌제는 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습니다. 성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입당이 거부돼 개인의 발전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포기하거나, 같은 죄를 저질러도 더 심한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분 제도가 북한 주민들의 삶 전반에 걸쳐 억압의 도구로 작용해 온 것입니다.
특히 연좌제로 인해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반국가적 행동으로 몰리면 그와 아무 관련이 없는 가족들까지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북한당국이 성분 제도와 연좌제를 계속 유지해온 이유는 그것이 강력한 주민 통제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동양문화권에서는 부모와 조상에 대한 존경과 복종,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며 북한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성분 제도와 연좌제의 폐해를 늘 보아온 북한주민들은 가족 때문에 특히 자녀들에게 좋은 성분을 물려주기 위해 당에 충성을 바쳐 왔습니다. 당과 정부의 정책에 불만이 있어도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감히 표현하거나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김정은이 연좌제 처벌 완화에 대해 언급했다고 해서 북한에서 연좌제나 성분 제도가 완전히 철폐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과거에도 북한당국은 성분 제도와 연좌제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당은 성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당에 대한 본인의 충성심을 위주로 평가하고 공정하게 대우해준다’고 했지만, 여전히 이 제도는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발언은 성분 제도와 연좌제가 주민들에게 끼친 부정적 영향이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북한 내부와 외부에서 점점 커지는 변화의 압력을 반영하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 자신도 성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차별을 받았으며, 이모의 가족은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런 배경은 김정은이 성분 제도와 연좌제 문제를 민감하게 다루게 만든 요인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북한 지도부는 이를 계기로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을 철저히 점검하고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21세기에 옛 봉건사회에나 존재했던 신분제도나 연좌제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북한의 국제적 위상을 떨어뜨리는 행위입니다. 2024년 11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북한의 성분 제도와 연좌제 철폐를 공식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이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요구일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입니다. 북한 지도부가 말이 아니라 실제로 성분 제도와 연좌제를 폐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때입니다. 인권 존중과 개혁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