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6.15 공동선언 7주년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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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금년 6월 15일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6.15 공동선언에 서명한 지 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만나서 여러 가지 논의를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상회담 한 번 했다고 해서 평화가 바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만나서 악수라도 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6.15 선언 이후에 남북관계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남한의 대폭적인 경제지원이 이뤄졌습니다. 파산직전의 북한 경제를 살렸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6.15 정상회담을 전후한 남한의 지원은 현재의 북한을 유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서 남한정부가 북한정권에게 5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은 그 정당성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도덕적으로 회담과 선언의 가치가 훼손된 것은 물론입니다. 정상회담의 대가로 제공된 5억 달러가 북한 주민들의 어려운 형편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도 불확실합니다.

6.15 공동선언 채택 7주년에 즈음해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 즉 민화협이 지난 7년을 회고하는 상보를 발표했습니다. 이 상보에서 북한 민화협은 소위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를 이념으로 승격시키고, 지난 7년은 “우리 민족끼리” 이념의 정당성을 과시한 기간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끼리”를 6.15 공동선언의 근본핵심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은 한 집안의 “우리 식구끼리”라는 말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거론할 필요도 없는 상식적인 말입니다. 한 동네에 사는 어떤 가족이 계속 “우리 가족끼리”라는 말을 밖에서 떠들며 다닌다면 그 동네의 이웃들이 이상하다고 손가락질 할 것이 분명합니다. 가족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고, 자기 가족까리 의논하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인 말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이웃과의 화목을 저해하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족끼리”라는 말을 너무 떠들다 보면 한 동네의 다른 이웃들을 모두 적으로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이 정치적인 선동구호에 그치지 않고, 이념으로 승격되어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 작용할 때는 여기에 숨겨진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북한의 민화협 상보가 주장한 대로 남한에서 힘차게 전개된 반미 촛불시위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시위 등 반미외세 투쟁이 바로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노리는 것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21세기의 오늘날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통신 모든 방면에서 세계가 그물망처럼 얽혀 있어서, 인류는 그야말로 한 지붕 아래의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한의 TV 드라마와 노래 프로그램이 중국과 동남아에서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습니다. 남한의 주요 방송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전달되는 세상입니다. 컴퓨터의 이 메일과 국제전화를 통해서 전 세계의 어느 누구와도 어느 때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국경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인류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국제사회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면서, 소위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를 자랑스럽게 외치면서 남한 사회의 반미 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져도 정말 한 참 뒤떨어진 착각이자 오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북핵문제 해결의 걸림돌 하나가 해소되었습니다. 바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묶여있던 북한 돈이 대부분 북한은행으로 송금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국제 금융시스템이 얼마나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혼자서는 결코 살아나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반복하는 것이 북한은 물론 우리 민족 전체의 이익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북한이 편협하고 배타적인 국수주의에서 탈피해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상식과 규범을 받아들이는 정상적인 국가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