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합의의 위반 당사자는 북한이다

최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제네바 합의가 파기되어 핵문제가 악화된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주장을 한 것에 대해 진작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당사자는 북한이라는 전성훈 남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논평입니다.

지난 5월 14일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은 북한이 지난 94년 미국과 체결한 제네바 합의의 위반문제에 대해서 많은 주장을 했습니다. 요약하면, 북한은 자기의무를 100퍼센트 성실하게 지켰지만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합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 제네바 기본합의가 파기되고 핵보유를 선언하는 사태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즉 북한 핵문제가 오늘날처럼 악화된 근본적인 책임이 미국에게 있다는 주장입니다.

과연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밝히는 것은 북핵위기를 촉발시킨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가려내서 정치적으로 또한 역사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자료와 사실을 토대로 제네바 합의 파기의 책임소재를 정확히 가려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오늘 논평에서는, 북한이 100퍼센트 자기의무를 완수했다고 주장하면서 제시한 근거가 잘못된 것이며, 제네바 합의가 파기된 주된 책임은 북한당국에게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아시다시피, 제네바 기본합의란 지난 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이 서명한 문건을 말합니다. 이 합의에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모든 핵활동을 동결하며 남북한이 합의한 비핵화 공동선언도 지키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 발전소를 지어주고 중유를 제공함과 아울러 양국사이의 정치, 경제 관계를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경수로발전소를 2003년까지 지어주기로 해놓고 10년이 지나도록 기초공사밖에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인 즉 맞습니다. 2005년 현재 경수로 건설은 전체공정은 반도 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수로사업이 왜 지연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자세하게 따져본다면 북한측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업이 시작된 초기에 북한은 남한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 “한국형경수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반대하면서 협상을 지연시켰습니다. 70퍼센트의 비용을 대는 남한의 역할을 규제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사업 자체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북한의 호전적인 대남 도발도 사업을 지연시키는 요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996년 9월에는 강릉에 북한의 무장 잠수함이 출현했고 북한의 특수부대원들이 남한에 침투해서 엄청난 혼란이 야기되었습니다. 당연히 경수로사업에 관한 협상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은 또한 존재하지도 않는 농축우라늄 계획 문제를 미국이 조작해서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농축우라늄 계획을 갖고서 다년간에 걸쳐서 관련 장비와 기술을 해외로부터 수입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입니다. 특히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인 칸 박사 자신이 파키스탄 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 북한에 어느 정도의 기술지원과 협력을 했는지 소상하게 밝혔고, 일부 내용은 언론을 통해서 전 세계에 다 알려진 바도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증거가 있으면 내놓으라고 하지만, 제3자인 파키스탄 쪽에서 관련 증언이 나오고 있는 마당에, 이제는 북한이 북한 땅에는 정말 농축우라늄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해 보일 차례일 것입니다.

북한은 또한 미국이 북한을 핵 선제공격의 대상에 올려놓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핵 태세검토보고서는 장래에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가상적인 상황을 설정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과의 분쟁이었습니다. 북한 말고도 중국 등 여러 나라가 핵이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 지명되었는데, 유독 북한만이 이 보고서의 내용을 문제 삼아서 지금도 미국이 핵 선제공격을 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핵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그런 공격도 이해할 수 있다는 여건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런 여건이란 북한이 다시 군사적으로 남한을 침략하거나 핵물질과 핵무기를 테러집단에 넘겨서 그 핵무기가 미국 본토에서 터지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더욱이 핵무기를 사용해서 공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한 북한당국의 확실한 이해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