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에 합의된 2·13 초기조치에 의거해서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 회의가 미국 뉴욕에서 열렸습니다. 양측은 관계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어려 가지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교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마디로 탐색전을 펼친 것입니다.
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되고 적성국교역법의 제재에서 벗어나서 관계정상화를 신속하게 달성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반면에 미국은 양국 관계정상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북한의 비핵화가 먼저 달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핵화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관건이 되는 문제의 하나가 바로 고농축우라늄, 즉 HEU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는 일입니다. 사실 HEU 문제는 현재의 제2차 북핵위기의 발단이 되었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2년 10월 미국의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부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비밀리에 HEU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과 합의한 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니 이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그보다 더 한 것도 갖게 되어있다면서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함으로써 북핵위기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자들은 그 후로 당초의 입장을 바꿔서 북한에는 HEU에 관련된 장비나 관련 기술자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 프로그램의 존재를 단호하게 부인해왔습니다. 미국이 의혹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이 먼저 증거를 제시해야 하고, 그러면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 북한이 이번에 뉴욕에서 열린 관계개선 실무그룹 회의에서 HEU에 관련된 장비를 도입했다는 것을 시인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기존의 완강한 부인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은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매우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북한의 고백이 철저하고 진실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일부는 숨겨두고, 일부만 공개하려 한다면 문제가 오히려 악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하던 당시에도 북한은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영변에 있는 두 개의 시설에 대한 공개를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이 두 시설은 북한의 재처리 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는 시설로 의심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과거 핵 활동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 두 시설에 대한 사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과거의 전력을 볼 때, 북한 당국이 이번에도 그동안 추진해왔던 HEU 프로그램의 전모를 밝히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국제사회는 이제 과거의 전례를 다시는 허용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우선, 북한은 현재 유엔안보리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나라입니다. 핵무기확산금지조약, 즉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 보유를 선언함으로써, NPT 체제를 크게 훼손했고, 한 발 더 나아가서, 국제사회의 만류를 뿌리치고 핵실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북한이 상대방을 속이고 약속 위반을 밥 먹듯이 하는 나라라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HEU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를 어겼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입니다. 북한은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이제 HEU 프로그램이 전력생산용이라는 핑계를 댈 수 도 없습니다.
셋째, HEU 프로그램은 외부의 감시로부터 숨기기가 쉬울뿐더러 핵무기를 개발하기도 쉽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술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북한의 핵보유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저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인 것입니다. 넷째,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는 것을 입증하는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이미 지난 2004년 5월 미국의 북핵문제 담당관이었던 디트라니 씨가 북한 당국자들에게 90분 동안에 걸쳐서 미국이 파악하고 있는 북한의 HEU 활동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확산방지구상, 즉 PSI 활동을 통해서 북한이 해외로부터 HEU 관련 장비를 밀수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훨씬 힘들어졌습니다.
결론적으로, 북한 당국자들은 북한의 핵개발 실태를 파헤치겠다는 국제사회의 결의가 아주 강하다는 것과 HEU 프로그램에 대해서 한 점의 의혹도 남겨두어서는 안되고, 또 그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