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북한이 서해상의 북방한계선, 즉 NLL을 둘러싸고 연일 도발적인 언행을 일삼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5월 남한의 함정들이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는 경고성 담화를 세 차례 내놓은 바 있습니다. 6월 들어서는 9일부터 25일까지 무려 다섯 차례의 담화를 발표하면서 서해상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전면전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북한의 방송매체들은 6.25 전쟁 57주년을 맞아 내보낸 방송에서 남북한 간에 서해상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2002년에 있었던 서해교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상과 공중을 포함한 전면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방송매체의 주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섬뜩한 협박입니다. 6.25 전쟁이 발생했던 6월에 핵무기까지 보유한 북한 당국이 전면전 운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반도의 한 사람으로서 착잡한 마음을 가누기 어렵습니다.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은 6.25 전쟁이 끝나면서 정전협정에 의해 합의된 바다의 군사분계선입니다. 당시 한반도 해역을 완전히 장악했던 유엔 연합군이 많은 부분을 북한에 양보해서 현재의 북방한계선이 만들어졌습니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에도 그렇고 그 후에도 수십 년간 북한은 북방한계선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었습니다.
심지어 1991년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와 1992년에 합의한 불가침부속합의서에서도 북한은 새로운 해상경계선이 쌍방 합의에 의해 확정될 때까지 북방한계선을 준수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북한당국은 꽃게잡이라는 명목으로 북방한계선을 계속 침범했고, 이를 정치\x{ff65}군사적으로 활용하면서, 급기야 1999년 9월에는 일방적으로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지금 북한당국이 남한 함정의 영해침범을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자기들이 임의로 설정한 구역을 침범했다는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마침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다시 탄력을 받으면서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고, 또 그 일환으로 국제원자력기구, 즉 IAEA 대표단의 평양 방문도 이뤄진 시점에, 북한이 대남 협박성 발언을 멈추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김정일 정권의 정전체제 무력화 전략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후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정일 체제는 정전체제에 대한 거부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해왔습니다. 특히 북.미간 잠정협정을 체결하고 공동 군사기구를 설치해서 군사정전위원회의 기능을 대체하자고 제안한 1996년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300 여명의 무장병력을 배치하는 등 정전체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직적인 시도를 했습니다. 정전체제의 상징인 판문점에 대한 김정일 정권의 혐오감도 감지됩니다. 과거에는 거의 모든 남북대화의 장소가 판문점이었지만, 지금은 제한적인 군사회담만 가끔 열릴 뿐입니다.
저는 북방한계선 문제에 대한 북한의 시비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은 이제 넘어섰다고 봅니다. 금년 중에 서해상에서 과거와 같은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해상의 무력충돌은 핵문제가 해결국면에 들어서는 것과 상충되기 때문에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견해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전체제 무력화라는 북한의 전략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함으로써 핵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인다면 한반도의 평화무드는 크게 고양될 것입니다. 6자회담이 열려서 불능화 조치를 논의하게 된다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만약 그런 와중에 서해상에서 무력충돌이 다시 발생한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요? 북한의 도발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겠지만, 분쟁의 불씨인 해상경계선 문제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제적으로 거세어지고, 더 나아가 정전체제의 대체문제까지 더욱 강하게 제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했지만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는 약속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 당국은 북방한계선을 핑계로 한 군사도발이 정전체제의 대체라는 북한의 전략을 완수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북방한계선이 유엔 그리고 국제사회와 합의한 중요한 약속이라는 점을 북한당국은 인식해야 합니다.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고 도발을 일삼는다면 북한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서 설 땅만 그만큼 좁아지게 될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