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북한 외무성의 미국 비난 담화를 보면서
2006.09.01
북한 외무성이 지난 26일 미국의 금융제재를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이 나오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진 시점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번 담화를 통해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번 담화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담겨져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먼저 긍정적인 면을 보자면, 북한이 6자회담에서 더 얻을 것이 많다고 스스로 인정한 점입니다. 북한은 금융제재가 해제되고 북한의 핵계획 포기와 미국의 평화공존을 교환한다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6자회담에 나와서 더 많은 것을 얻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항상 전제조건을 앞에 내걸고 장미 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북한의 상투적인 협상수법이긴 하지만, 6자회담이 북한에게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다고 언급한 이번 담화의 내용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분명하게 공식 매체를 통해서 밝힌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6자회담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는 미국 정부가 6자회담 복귀를 종용하면서 줄곧 북한에게 제시했던 것입니다. 즉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가 6자회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논리를 사실상 수용한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 이런 점을 인식하면서 이번 담화를 발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담화의 내용이 미국의 논리를 일부 수용한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점은 북한이 당면한 금융제재의 위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해도 당장 핵포기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다시 지루한 협상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이 6자회담의 장점을 인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핵포기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6자회담 참가를 금융재재를 제거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는 측면이 많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간에, 이번 담화에서는 미국의 논리를 일부 수용하면서까지 금융제재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려는 북한당국의 고뇌가 엿보인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담화에서 드러난 부정적인 면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으로 회피하려는 북한당국의 자세입니다. 북한은 이번에도 달러를 위조하거나 돈세탁을 한 적이 없고, 이런 행위를 금지하도록 완벽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항변에 귀를 기울일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이 북한과의 계좌를 여는데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있고, 베트남도 북한의 불법 계좌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다음 달 베트남에서 열리는 APEC, 즉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재무장관 회의 때 북한의 불법자금을 차단하기 위한 공동 노력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21개 나라의 협의체인 APEC도 북한의 불법자금 차단을 위한 국제적인 금융제재 노력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게 된다면, 북한당국은 지금보다 더 큰 재정적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동북아 더 나아가서 국제정세의 흐름은 북한이 과거의 잘못을 부인하고 회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아닙니다. 미국이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어떻게 중국이나 베트남을 설득해서 북한의 불법계좌를 동결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북한이 당면한 금융제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북한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서, 이런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북한당국의 의지만 있다면, 북한이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당국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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