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이번 주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의 핵전문가들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영변의 핵시설을 둘러보고 이 시설들을 불능화 하는 방법과 절차에 대한 기술적인 협의를 갖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2.13 합의가 보다 완전하고 빈틈없는 합의였다면, 지금 시점에 핵전문가들이 영변을 방문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검토와 합의까지 끝내고 나서 2.13 합의에 서명하는 것이 바람직한 협상 순서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현재 영변에 있는 주요 핵시설 서 너 곳을 어떻게 불능화할 것인가를 두고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능화의 방법이 합의되면 그 결과를 곧 개최될 6자회담에서 승인받고 바로 불능화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제는 불능화가 참 애매모호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동중단과 완전해체 사이의 중간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재가동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불능화인지 아니면 재가동이 아예 불가능한 정도의 불능화인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북한은 재가동이 가능한 불능화를 원하고 있고, 반면에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은 재가동이 불가능한 불능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조금만 수선을 하면 즉시 재가동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영변 핵시설을 계속 협상의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불능화와 함께 논의되는 것이 모든 핵프로그램에 대한 신고 문제입니다. 신고의 범위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핵심은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고농축우라늄, 즉 HEU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하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까지 핵무기와 핵시설을 분리해서 다뤄왔던 북한의 전략을 감안할 때, 북한이 핵무기에 대한 신고를 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핵무기에 연동된 사안이라는 이유로 플루토늄에 대해서도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북한이 생산한 플루토늄의 총량은 공개되겠지만, 핵무기 제조에 사용하고 남은 양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을 것입니다. 핵무기의 화약에 해당하는 플루토늄의 사용 규모가 공개되면,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의 개수를 추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HEU에 대해서도 모든 사실을 남김없이 밝히기 보다는 북한 당국이 생각하기에 미국이 알고 있다고 추정되는 정도 이상은 내놓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이 플루토늄 프로그램은 포기하더라도 HEU 개발을 지속할 것이라는 우려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한 예로서, 남한으로 망명한 황장엽 비서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군수공업 책임자인 전병호가 파키스탄에서 귀국 한 후 이제 플루토늄 대신에 HEU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북핵 문제가 불능화와 신고 단계로 진입하는 것은 분명히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과연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솔직하게 모든 것을 공개할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체제의 비밀주의적 폐쇄성과 북한정권의 핵에 대한 집착을 감안할 때, 다른 경로를 통해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계속할 것이라는 의혹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뉴욕타임지와 워싱턴포스트지 등 미국의 유력 일간지들이 북한과 시리아가 핵에 관한 협력을 추진 중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를 했습니다. 지난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이 시리아의 특정 시설을 공습했는데, 그 시설이 북한과 시리아가 협력하고 있는 핵시설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공식 논평을 삼가하고 있지만, 양국 간에 긴밀한 정보협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이 지난 11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도 예사로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금이나마 의혹이 해소되려는 순간에 더 크고 중요한 의혹이 터지는 것이 바로 북핵 문제입니다. 이는 북핵 폐기 임무가 완수되는 그날까지 경계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