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11월 중 한반도에서는 중요한 사건들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우선 영변의 핵시설을 불능화 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데, 11월 1일 미국의 핵기술 전문가팀이 이미 북한에 입국한 상태입니다.
11월 중순에는 남북한 간에 총리급 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게 됩니다. 지난 1990년대 초 남북고위급회담을 진행하면서 총리회담을 가진 이래 거의 15년 만에 다시 열리는 총리급 회담입니다. 회담의 격이 높아진 만큼 장관급회담에 비해서 많은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리게 됩니다. 아직 일정이 잡히진 않았지만, 총리회담이 끝나고 나서 조만간 개최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굵직굵직한 회담이 열리는 만큼 여러 가지 합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10월 초 남북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가 있었다면, 총리회담과 국방장관회담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사안들이 합의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런데 합의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에 비례해서 그 중요성이 더 커지는 것이 바로 검증 문제입니다.
검증이란 국가와 국가가 약속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와 방법을 지칭하는 전문용어입니다. 국가 간에 맺어진 합의 역시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군사문제의 경우에는 검증의 중요성이 더욱 커집니다. 상대방의 말만 믿고 있다고 위반을 당하는 경우에 국가안보에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의 군사협상을 보면, 조약내용에 거의 다 합의해 놓고도 막판에 검증 문제 때문에 협상이 무산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남북한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초 비핵화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핵통제공동위원회는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를 논의하다가 아무런 결실도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체제의 변화와 비핵화가 실현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체제의 진정한 변화야 말로 비핵화를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핵폐기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 북한 정권의 사고와 입장 그리고 전략에 진정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검증체계가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받아들이는 검증의 범위가 포괄적이고 그 강도가 높을수록 북한의 변화 의지가 그 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검증은 북한체제의 변화 여부와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잣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검증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북한의 내부고발자를 확보하는 것이다. 핵개발 실태와 현장 상황에 익숙한 내부고발자야 말로 정보가 극히 제한된 북한과 같은 폐쇄체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특히 핵무기의 개발 현황과 현지 시설의 운용에 정통한 정보제공자는 최첨단 과학기술 장비 못지않은 귀중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핵폐기의 핵심은 검증입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토대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관건도 검증입니다.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말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의도를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상대의 말만 믿고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핵무기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는 김정일의 세치 혀끝에 남한의 안보를 맡길 수는 없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또한 “돌다리도 두들겨서 건너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매사에 방심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침착성과 조심성을 잃지 말라는 격언입니다. 북핵폐기 임무를 완수하고 북한의 비핵화 상태를 검증하기 위한 길을 나서는 데 있어서 이 두 가지 속담이 우리에게 바람직한 이정표를 제시해줄 것으로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