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북한의 미국.남한 길들이기 전략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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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거의 20여 년이 되어가는 북한 핵문제의 진행과정을 보면 북한의 대외전략이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얘기한다면, 합의를 헌신짝 버리듯 하는 태도, 입으로 쏟아내는 막말 그리고 거칠고 위협적인 행동이 아마도 북한이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행태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북한 지도부는 이런 전략을 통해서 핵무기를 보유하는데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북한의 요즈음 행태를 보면, 마치 미국과 남한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길들이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북한이 지금까지 구사해 온 소위 ‘벼랑 끝 전략’이라는 것이 벼랑 끝까지 상대방을 몰고 가서 양보를 받아낸다는 점에서 길들이기 전략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거친 행동으로 상대방을 위협하고 길들여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바로 벼랑 끝 전략이니까요.

그런데 요즘 북한당국의 대미외교 그리고 대남정책에서 이색적인 것은 자기들이 마치 합의사항을 잘 지키려고 하는데 미국과 남한이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내 탓이 아니라 당신 탓”이라는 것이 북한당국이 국제사회를 대할 때 갖고 있는 기본인식이긴 하지만 요즈음 이런 점이 크게 강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7월 6일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북한이 ‘2.13 합의’에 따른 약속을 앞당겨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핵시설 가동중단은 ‘2.13 합의’가 이행되기 시작해서 60일 안에 하면 되지만 ‘방코델타아시아’ 즉 BDA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에 중유 5만 톤 가운데 첫 선적분만 도착하면 핵시설 가동을 앞당겨서 중단하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굉장히 선심을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외무성 대변인의 이런 주장 자체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BDA 문제를 핑계로 ‘2.13 합의’ 이행을 거부한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행위입니다. 미국은 마카오의 BDA 은행에 묶여 있는 돈 가운데 합법적인 자금을 북한이 인출해가는 데 동의했을 뿐인데, 마치 불법자금까지 포함한 전액을 그것도 국제금융망을 이용해서 인출하도록 약속한 것처럼 억지를 부린 것은 북한당국입니다. BDA 문제는 ‘2.13 합의’를 이행해보려는 미국의 큰 양보가 없었다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서해상의 북방한계선, 즉 NLL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저의 논평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금년 들어 NLL 문제에 대한 북한의 공세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말로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비판과 협박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은 자기들이 임의로 그어 놓은 해상경계선을 남한 해군이 무단 침범하고 있다며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기존의 NLL을 준수하면서 쌍방 간에 협의하자는 남한과의 약속은 완전히 무시한 채, 해상경계선이란 것을 일방적으로 선포해놓고서는 남한이 이 선을 침범했다는 것만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행태에는 평화를 애호하는 북한은 문제가 없는데 미국과 남한의 대결세력이 문제라는 북한당국의 기본시각이 깔려 있다고 저는 봅니다. 또한 거친 행동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면서 남한과 미국을 길들이겠다는 북한의 전략이 그 바탕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략의 역설’라는 것입니다.

전략의 역설이란, 한 가지 전략을 계속해서 사용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역으로 패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략구사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이 그 전략에 적응하게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대응전략을 고안해서 맞대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전략의 역설은 역사적으로 그 타당성이 입증된 전략학문의 중요한 이론 가운데 하나입니다. 북한의 벼랑 끝 전략과 길들이기 전략이 전략의 역설을 비켜 가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북한당국이 전략의 역설을 뼈아프게 체감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진실과 성실뿐입니다. 남한과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진실한 자세로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