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추석이 지난 한반도에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추석날이던 지난 25일 유엔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국민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부정하는 야만적인 정권이라며 북한을 비난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함께 시리아, 이란, 벨로루시를 야만정권이라고 규정하고, 모든 문명국가들이 독재정권 하에서 고통 받는 주민들을 위해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면서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 정권을 보는 부시의 관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합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서, 27일부터 북경에서는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시설을 불능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을 논의 중인데, 입장차이가 커서 진통이 있는 모양입니다. 일전에 저의 논평에서 말씀드렸듯이, 어중간한 수준의 불능화에 합의할 가능성이 큽니다. 10월 초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됩니다. 남한에서 2차 선발대가 평양을 방문하는 등 막바지 준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정세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 유럽에서 날아 온 한 가지 불길한 소식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의 타임지가 보도한 북한-시리아간 핵 밀거래 가능성입니다. 시리아 북부에서 북한과 시리아가 핵시설을 지어 놓고 협력하고 있다는 보도였습니다.
9월 1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을 비난한 다음부터 유력 일간지들이 이 문제를 다뤘고, 미 국무부의 고위 관리와 국방부장관과 국무장관 그리고 부시 대통령까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2002년 10월 제2차 핵위기를 초래한 고농축우라늄 사건과 같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이 시리아 북부의 시설을 폭격하기까지 상당한 준비와 노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금년 초부터 이 시설에 대한 공격계획을 수립하고 미국의 의사를 타진했지만 미국은 이 시설이 북한의 핵확산과 관련이 있다는 정확한 정보를 원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지지가 필요했던 이스라엘은 특수부대를 이 시설에 잠입시켜 핵물질 샘플을 탈취했고, 이를 분석한 결과, 북한에서 들여 온 핵물질이라는 과학적인 근거를 확보했다고 합니다. 이 증거를 제시해서 미국의 동의를 얻은 후에 공습을 감행했다는 것입니다.
북한과 시리아는 오랜 동안 긴밀하게 군사협력을 추진해왔습니다. 시리아는 북한의 지원 하에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는 스커드 미사일을 개발했고,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때마다 시리아 군사대표단이 목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 나라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감안할 때, 핵무기 분야에서의 협력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미사일과 달리 핵무기 확산은 넘어서는 안 될 금지선으로 미국 정부가 분명하게 규정했기 때문에, 북한정권이 감수해야 할 위험도가 크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에서 보듯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핵확산과 미사일 확산 간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만큼 국제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보도의 신빙성이 없다거나 미국 내 보수파의 역공이라는 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가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습을 감행한 것은 그 만큼 사안의 중요성이 크고 확신할 만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제사회의 전반적인 여론은 북한이 왜 핵물질을 시리아로 보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핵개발을 지원하기 위해서인지, 미국의 사찰에 대비해서 핵심 물질을 시리아로 은폐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이란으로 보내는 과정에 시리아를 중간 경유지로 삼은 것인지 아직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시리아가 북부 지역에서 핵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작년 12월 쿠웨이트의 한 일간지에 의해 보도된 바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이 보도가 나간 후 시리아와의 핵 커넥션 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한 북한이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2.13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