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2.13 합의’가 체결된 이후 남한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흐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남과 북은 정전체제 하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이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잠정적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남과 북은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애매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란 이런 잠정적인 평화 상태를 종식시키고 완전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현재의 정전상태를 공고한 평화 상태로 바꿔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지난 ‘2.13 합의’에서 북한이 핵폐기의 길로 들어서겠다고 약속했고, 이러한 약속을 믿고 다섯 개의 실무그룹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가 남한 국민들 사이에서 높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05년 9월 체결된 9.19 공동성명에는 6자회담 참가국들이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 3월 초 북경에서 개최된 회의의 하나가 동북아 안보와 평화 문제를 다루는 실무그룹이었습니다. 9.19 공동성명은 또한 동북아 안보 실무그룹과는 별도로 관련 당사국들이 모여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다루는 회의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동북아 안보실무그룹까지 열린 마당에 이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정서가 남한 사회에 깔려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월 초 뉴욕에서 개최된 북\x{ff65}미 관계정상화 회담이 좋은 분위기 속에서 열렸고, 평화체제 구축 문제까지 논의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평화체제 문제에 대한 남한 사회의 열의를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남한 사회에서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가깝게는 지난 1990년대 중반에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모여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4자회담을 제의한 것도 남한 정부였습니다. 4자회담은 평화체제 구축과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를 다루는 두 개의 분과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북한이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흐지부지되어 버렸습니다.
사실 남한의 역대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기본 이념 하에 여러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1974년에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한이 불가침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했고, 1990년 노태우 대통령도 남북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한 바 있습니다. 평화체제 구축문제에서 남한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남과 북이 주인이 되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남북한 당사자 해결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북한이 남한의 이런 요구를 일부 수용해서 지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면서 불가침 부속합의서를 채택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가침 부속합의서는 체결만 했지 북한이 이행을 거부하면서 역시 종이쪽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불가침 부속합의서가 비록 노태우 정부에서 체결되었지만, 이후 남한의 역대 정부가 모두 이 합의서가 제대로 이행되도록 북한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만 북한은 묵묵부답입니다.
북한이 이 합의서를 거론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경우, 즉 미국에 대해서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할 때입니다. 남한과는 불가침합의가 되었으니, 평화협정은 북한과 미국 간에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남한은 북한의 이런 입장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최종적으로 정착시키는 문제는 남과 북이 주인이 되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남한 국민과 정부의 확고한 입장입니다.
최근 남한 사회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봐도, 평화협정의 주된 서명당사자가 남과 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주 분명해 보입니다. 물론 미국과 중국 등 6.25 전쟁에 참여한 국가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평화체제의 주인공이 남북한이어야 한다는 것은 남한 국민들의 확고한 신념인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당국이 요즈음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열의가 매우 뜨거운 요즘입니다. 이제는 북한 당국이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고 한반도 평화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할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