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북한의 최수헌 외무부상이 8,000여개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끝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무기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고위 인사가 외신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했다는 점에서 북한정권의 의중이 무엇인지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논평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논평내용은 논평가 개인의 견해입니다.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중인 북한의 최수헌 외무부상이 9월 29일에 있은 한 인터뷰에서 8,000여개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끝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무기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입장은 이미 북한 당국이 여러 차례 표명해 온 것이지만 외무부상이라는 책임 있는 인사가 뉴욕에서 외신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했다는 점에서 북한정권의 의중이 실려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8,000여개의 폐연료봉이란 북한이 지난 94년 영변에 있는 5MWe 원자로의 가동을 중지하고 원자로 속에서 인출한 핵연료를 말합니다. 이 핵연료를 재처리하게 되면 핵무기의 연료인 플루토늄을 얻게 됩니다. 폐연료봉은 처음에는 수조에 보관하다가 제네바 합의가 체결된 후 미국 전문가팀이 철제 통 속에 넣어서 안전하게 보관해왔었습니다. 그런데 2002년 12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 즉 IAEA 사찰단을 추방한 후 폐연료봉에 대한 사찰이 이뤄지지 않아서 폐연료봉이 어떤 상태로 있는가에 대해 많은 의혹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2003년 여름에 폐연료봉을 모두 재처리 했다는 사실을 미국에 통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8,000 여개의 폐연료봉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은 나가사키에 투하된 정도의 핵무기 대 여섯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으로서, 북한이 갖고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소위 핵 억지력의 중요한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2004년 1월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의 루이스 교수와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장을 지낸 헤커 박사가 영변을 방문했을 때, 북한당국은 플루토늄 샘플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최수헌 외무부상이 언급한 무기화라는 말은 화약에 해당하는 플루토늄이나 고농축우라늄과 같은 핵물질을 파괴력이 강한 핵장치로 전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통상적으로, 핵물질의 무기화는 다음과 같이 세 단계를 거쳐서 완성된다고 봅니다.
첫째, 핵장치를 설계?제조하는 기술을 습득하고 설계와 제조 기법이 정확한지를 고폭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북한의 경우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140여회 이상의 고폭실험을 실시해서 상당한 기술을 습득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둘째는 핵실험입니다. 설계도면대로 제조한 핵장치가 실제로 터지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실제 핵장치를 터뜨려 보는 것이 핵실험입니다. 미국은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핵장치를 투하하기 전에 뉴멕시코 주 사막에서 핵실험을 실시했었습니다. 1998년 5월 인도와 파키스탄도 모두 11차례의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해서 두 나라는 핵보유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최근 미국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를 포착하고 서 너 곳의 지역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양강도 폭발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양강도 폭발을 북한의 핵실험으로 오인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었습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제조기술이 상당히 발달해서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고도 사용가능한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핵실험은 북한정권이 남한과 미국에 대한 자극 정도를 최소화하면서 핵 억지력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의 하나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적절한 시점에 정치적, 전략적인 이익을 노리며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핵물질 무기화의 세 번째 단계는 핵장치를 소형화, 경량화 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60년 전에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장치는 파괴력이 20kt짜리의 플루토늄 핵장치로서 그 무게가 6,000 kg에 달하는 거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형 전폭기를 개조해서 겨우 한 개의 핵장치를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20kt짜리가 아니라 10kt 정도 되는 소형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같은 파괴력을 갖는 핵장치라 하더라도 무게를 줄여서 운반을 쉽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남한의 열린 우리당의 장영달 의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할 때, 이번 최수헌 외무부상의 ‘무기화’ 발언은 단순한 개인 차원의 언급이 아니라 북한이 핵 억지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서 꺼낸 고도의 전략적 카드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