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사이에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를 시험 운행하는 일이 조만간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한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이번 달 17일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의 시험 운행을 위한 한시적인 군사보장 장치를 마련한다는데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중인 지난 1951년 6월 12일 운행이 전면 중단된 이후 56년 만에 남북의 열차가 한반도의 허리를 횡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의선의 경우 남한의 문산에서 북한의 개성까지, 동해선의 경우에는 북한의 금강산에서 남한의 제진까지 시험운행을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열차 운행은 단 한 차례의 시험운행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가 남북을 가로질러 달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한의 군사분계선 근처 임진각 지역에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선로에 멈춘 채로 녹슨 열차 한 량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어가 말해주듯이, 이 녹슨 열차는 북한 출신 실향민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남한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상징하는 징표였습니다.
이제 지난 반 세 기간 잠들어 있던 녹슨 철마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듯이, 남북사이의 끊어진 철로가 이어지게 된 것은 남북 분단사의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의 시험운행을 군사적으로 보장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한 남한 국민들은 이번의 철도운행이 단발성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지면서, 평화통일의 촉매제가 될 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도 마음속에 똑같은 희망을 품고 계실 것입니다.
이번 열차 시험운행 합의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었다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남과 북이 열차의 시험운행에 합의한 것은 지금부터 17년 전인 1991년 9월의 일입니다. 당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x{ff65}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했는데, 그 합의서 제19조에서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10년 여간 아무런 얘기가 없다가 철로 개통문제가 다시 거론된 것은 지난 2000년 7월이었습니다. 당시 개최된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를 연결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은 합의와 이행이 별개라는 사실이 철로 연결에서도 그대로 입증되었습니다. 2000년 이후 남북회담의 합의문이나 공동보도문에서 열차 시험운행 시기에 합의하고도 지키지 못한 것이 다섯 차례나 됩니다.
2006년 5월에는 시험운행 날짜를 같은 달 25일로 잡았지만 하루 전날 북측이 군부의 반대로 군사보장을 할 수 없다며 일방적으로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군사보장 합의서 채택이 중요한 것은 1회의 시험운행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군부의 반대라는 장애물은 걷어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이번에는 북한 군부도 시험운행에 반대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어려운데다, 남측이 철로 시험운행을 8천만 달러에 달하는 경공업 원자재 제공사업과 사실상 연계했기 때문입니다. 즉 북한은 경공업 원자재를 제공받기 위해서 일회성 시험운행에 동의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열차 시험운행이 이뤄지면 통일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열정은 지금보다 더욱 뜨거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 당국은 그러한 열정을 이용해서 남한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시도할 것이 분명합니다. 매년 한 차례 시험운행을 허용하는 대가로 경제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행동패턴이 굳어질 것도 우려됩니다.
이산가족 문제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북한이 남북대화에 임하는 기본자세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북간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 목적이 아니라 북한정권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 남북대화를 악용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점에 대해서는 훗날 역사와 후손의 준엄한 평가와 심판이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