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미국, 러시아의 미사일 냉전과 북한 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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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이번 주에는 유럽에서 북핵문제 해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두 가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하나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유엔안보리가 승인한 대북 제재결의안 1718호를 이행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지금까지 유엔결의안을 이행하는데 매우 소극적이었지만, 이번에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꾼 것으로서, 아마 북한 당국도 상당히 당혹스러워할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모든 정부기관과 은행, 기업 및 관련 기관들이 북한과 거래를 할 때 유엔결의안 1718호를 준수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서 러시아는 전차, 전투기, 헬리콥터와 같은 무기체계와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물질을 북한에 판매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종사하는 전문가와 기술자의 북한 입국도 불가능하며, 귀금속이나 시계 등 사치품의 대북 수출도 금지됩니다.

다른 한 가지 소식은 미사일방어망, 즉 MD 구축을 둘러싸고, 미사일 냉전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과 러시아 간에 새로운 긴장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5월 29일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새로운 다탄두 핵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11,000km이고, 최대 10개의 핵탄두를 실을 수 있다고 합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미사일 발사시험에 대해서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대응이며 새로운 군비경쟁이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 계획을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에 미사일방어망 기지를 설치하는 것을 어떻게 두고만 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5월 31일 독일의 포츠담에서 열린 서방선진국 외무장관 회담에서도 미국과 러시아 국무장관 간에 MD 문제를 둘러싸고 설전이 오갔습니다.

이번 주 유럽과 러시아에서 전해진 두 가지 소식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긴밀하게 연관된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전에 저의 논평에서, 러시아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망 구축에 자극받는 것만큼, 아시아에서 미,일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방어적 차원의 대응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미국에게 이러한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 오히려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진단한 바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저는 이번 러시아 당국의 대북 제재동참 결정은 바로 미국에게 미사일방어망 구축의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 정부가 북한 핵문제를 미국과의 대결이라는 보다 큰 구도에서 바라봤을 때, 북한의 핵보유가 자국의 안보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의 대북 제재 결정은 러시아가 북한의 핵폐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한 달 후인 7월 1일 푸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 러 정상회담에서는 미사일방어망 구축이나 북한 핵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텐데, 회담에 앞서 MD 구축의 명분인 북핵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회담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계산도 깔려있을 것입니다.

MD와 북핵문제의 결합은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더 이상 한반도나 동북아 지역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 핵문제는 이미 한반도를 떠나서 세계 안보질서와 국제적인 힘의 역학관계에 편입되었고, 그러한 구도 하에서 어떤 형태로든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핵개발 당사자인 북한 정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북한 핵문제가 국제정치의 동력을 따라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