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독재자 생일의 씁쓸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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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6일은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사악한 공산주의 독재의 추억을 불러이르키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이날은 냉전시대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1918년에 태어난 니콜라에 차우체스쿠는 1989년 12월 온루마니아 국민들에 의한 반공산주의 혁명때 군사재판으로 인한 사형을 당하지 않았다면 1월 26일에 92번째 생일을 맞았을 것입니다.

냉전시대에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렸던 루마니아는 동유럽 공산국가들중 북한과 가장 비슷하였습니다. 사실 그당시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차우체스쿠가 1971년부터 북한을 여러번 방문하면서 북한식 독재주의, 주체 사상과 독재자 개인숭배에 감탄한 나머지 루마니아를 북한과 비슷한 독재국가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독재자 차우체스쿠의 개인 숭배는 악명높은 나치 독재자 히틀러, 소련의 붉은 황제이던 스탈린이나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개인숭배 정도이며 1970년대와 1980년대 동유럽공산국가들중 가장 심했습니다.

1989년12월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지기 전 차우체스쿠 생일축하 잔치는 북한의 '태양절'만큼이나 큰 대규모 행사였습니다. 당시 심각한 전력난 때문에 루마니아에 하나밖에 없는 TV 방송국은 매일저녁 2시간밖에 방송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루마니아 정부는 독재자의 생일인 1월 26일 이주전부터 텔레비전에서는 영화나 다른 오락 프로그램은 전혀 보여 주지 않고 독재자와 그의 아내를 위한 음악회나 무용회, 독주회만 보여 주곤 했습니다. 차우체스쿠 생일에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쉬티뿐만 아니라, 모든 루마니아 도시 중심가에 있는 광장에 관중들이 동원돼 구호를 외치면서 독재자를 숭배하곤 했습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루마니아의 아이들은 광장에 나가 음악회, 독주회와 무용회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1월말 추운 겨울에도 학생들은 루마니아의 국기 색인 빨강, 노랑과 파랑색 얇은 옷을 입고 하루종일 꼼짝도 못한채 바깥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저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때 독재자의 생일 축하 예술축전에 여러번 참여했습니다. 노래도 별로 못하고 무용도 못했기 때문에, 저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항상 노란색 옷을 입고 광장에 우두커니 서서 시키는대로 박수를 치고 독재자를 숭배하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다들 창피해서 우리들은 구호를 외치는 척 했지만, 독재자 숭배의 구호가 스피커로 크게 나갔기 때문에 들키진 않았습니다. 옷 하나라도 더 두둑히 입고나가려고 하긴 했지만 예술축전이 끝나고 나면 항상 감기에 걸려 며칠동안 고생하곤 했습니다.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차우체스쿠 시대에 북한의 '친선예술축전'을 루마니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는데 당시 인상이 제일 깊었던 것은 북한 어린이들의 완벽한 연주, 노래와 무용이었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실수하는 것은 그 나이또래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북한 어린이들은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완벽한 연주나 무용을 위해서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능히 짐작할수 있었습니다. 저도 공산독재 체제 아래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미소뒤에는 고통과 눈물이 가득차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저를 포함한 루마니아의 아이들은 차우체스크와 그의 아내를 숭배하기 위한 무용회, 음악회와 독주회에 참가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너무나도 소중한 시기일 것입니다. 어린이가 어린 시절을 즐길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든 절대 침해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도의 기본적 권리인 것입니다. 독재자 숭배를 위해 어린이들의 이러한 인권을 빼앗고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반공산주의 혁명때문에 차우체스쿠는 자신의 계획대로 큰아들인 '니쿠'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못했지만 북한은 지난 60년넘게 공산주의독재 세습국이었습니다. 언젠가 북한의 어린이들도 전세계 자유주의 나라 어린이들처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는 날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