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민주주의의 타락, 권력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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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개월동안 국제언론은 9월 전반기에 북한에서44년 만의 노동당 대표자회 개최가 예정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또 국제언론에 따르면 이번 대표자회로 김정일 국방위원회장으로부터 셋째아들인 김정은에게 권력 세습 과정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 언론매체는 노동당 대표자회와 관련하여 전혀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1994년 김일성 전 국가주석 사망 후 한번의 권력 세습이 있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관한 많은 보도가 있었으며 여러 가지 추측 중 김정일의 자녀에게 이어지는 권력 세습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39세인 김정남, 29세인 김정철, 27세인 김정은 씨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 아들과 36세의 딸 김설송 씨 중 유력한 후계자는 막내 아들 김정은이라는 보도까지 최근에 있었습니다.

16년 전 이뤄진 북한의 2대 세습이 이제 '3대 세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할 때 북한은 중세시대의 왕국을 떠올리게 합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뿌리를 바탕으로 나라의 지도자를 자유 선거의 과정을 통해 뽑는 것은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공산주의 독재로부터 개방된 지 20년밖에 되지 않은 동유럽 신자유민주주의국가들도 아직까지 시민사회의 움직임과 민주주의 과정에 대해 배울 것이 많지만, 자유선거를 기본으로 하여 권력 세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공화국'이라 주장하면서 자유 선거가 아닌 권력 세습을 통해 독재자의 가족안에 권력을 유지하려 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무시하는 경우는 북한만이 아닙니다. 기원전 27년부터 서기14년전까지 고전로마의 지도자이던 '아우구스투스'는 의붓아들이자 양자인 '티베리우스'에게 권력을 넘겨주면서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그후로 '아우구스투스'와 양아들인 '티베리우스'로부터 권력 세습을 받은 '아우구스투스'의 친척들중 아주 사악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게르마이쿠스'의 아들인 '칼리굴라'는 과대망상증에 걸려 화려한 만찬을 즐기며 로마의 시민들을 탄압하고 굶겼기 때문에, 인류역사에서 사악한 인물로 남겨졌습니다.

또 37년부터 68년까지 권력 세습을 받아 로마를 지도하던 '네로' 황제도 병적으로 그리스도교를 심하게 박해하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경기장의 굶주린 사자들앞에 던지고 '네로'의 명령으로 로마에 대화재를 일으키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짓이었다고 거짓말하고 그들을 더욱더 심하게 탄압했습니다. 고전 로마제국 당시 '아우구스투스,' '칼리굴라'와 '네로'는 심한 개인숭배를 받았습니다. 사실 아직까지 서양언어로 '8월'이라 하면 이를테면 영어로 'August'라는 말은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한 단어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후계자인 '칼리굴라'와 '네로'황제의 운명은 결국 비극적이었습니다. '칼리굴라'는 암살을 당했고, '네로'는 내전에 패배하며 자살을 했습니다.

현대역사를 보면 권력세습이 이뤄졌던 경우가 또 있습니다. 이를테면, 19세기에 남미국가인 파라과이, 또20세기 중남미 국가인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와 아이티, 아프리카의 토고, 콩고, 가봉과 지부티, 중동의 시리아와 이라크, 또 구소련 국가인 아제르바이잔 등입니다. 이모든 국가들의 공동점은 인권을 심하게 유린하고 정치탄압이 심하며 항상 불경기에 빠진 독재국가라는 것입니다. 자식이나 형제에게 권력을 넘기면서 같은 가족안에 권력을 가지려는 이러한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민주주의 공화국'이라 주장하면서 '대통령,' '총리,' '수상,' '당총리비서'라 주장하지만, 사실 중세시대의 왕이나 황제와 별다른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보면 권력 세습이 이뤄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압둘 살람 아리프' 이라크 대통령은 형제인 '압둘 라흐만 아리프'에게 권력을 넘기는 데 성공했지만, 이라크의 독재자이던 '사담 후세인'은 아들인 '우다이'나 '쿠사이'에게 권력을 넘기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3대세습이 이어질 수도 있는 현상황에서 옛날 루마니아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의 자녀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시대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의 상황은 인권 침해, 정치 탄압과 식량 부족으로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국가들중 북한과 가장 비슷했습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체스쿠와 아내 엘레나는 아들 둘, 딸 하나 등 세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 세 자녀들 중 정치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사람은 큰 아들 '니쿠'였습니다. 큰 아들 '니쿠'는 공산당 청소년회장으로 활동해 많은 국민들은 그가 아버지의 권력을 세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술고래라는 별명이 있었고 특히 성폭행과 관련된 소문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사람들 중에는 젊고 학력이 높고 해외여행의 경험이 많은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경우 아버지 때보다는 생활수준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런 기대와 희망을 가진 국민들에게 실망만 주고 말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 반공산주의 혁명이 국내에서 일어나자 아버지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지키기 위해 혁명에 참여한 민간인들을 총으로 쏘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민간인들과 루마니아 군에 의해 생포되어 나중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감옥으로 가진 않았고 그러다 1996년 9월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대부분 루마니아 사람들은 '니쿠'를 악명 높은 술고래와 바람둥이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옛날 '니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 신문 인터뷰를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도 옛날 루마니아 공산당 간부 자녀였으며, '니쿠'와 함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혼란스러운 생활을 함께 했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니쿠는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지만, 사실 낭만적인 남자이며 여성 앞에서는 부끄럼 때문에 친구의 소개를 받아야, 여자들과 말을 할 수 있었고 그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열악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니쿠'도 부모를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니쿠'의 어머니인 '엘레나'는 자식에게 너무 강했고 큰아들을 아버지의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니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중요한 공산당 간부의 딸과 결혼을 시켰고 그렇기 때문에, '니쿠'의 친구들은 어머니의 지독하고 엄격한 태도에 반항하려고 그의 사생활이 더 혼란스러워졌다고 했습니다.

'니쿠'가 부모에게 그가 느끼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고통을 설명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이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길로 왜 나가고 싶은 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 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유혈 혁명과 국민들의 희생이 아닌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체제로 바꿔놓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니쿠에게 주어진 역사적인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니쿠'는 그 기회를 놓쳤고 루마니아 역사에 있어 아무런 유산도, 도움도 안되는 인물이 돼 버리고 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