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냉전시대 루마니아의 북한 유학생들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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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튜] 냉전시대 루마니아의 북한 유학생들 사진은 김일성대 홈페이지에 공개된 대학생과 유학생들의 모습.
/연합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북한이 지난 6월5일 8발의 탄도미사일을 한꺼번에 발사했습니다. 역시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북한 당국은 나라의 경제발전을 모든 면에서 희생시키며 현재와 미래의 국가 발전에 필요한 젊은 인적 자원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젊은 사람들이 코로나 방역을 위한 통제 때문에 지난 2년반 동안 고생해 왔습니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도 학생들이 학교를 못다니고 유학을 하지도 못하면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한 교육을 계속 받았습니다. 이젠 대부분 나라들은 코로나 사태를 극복했기 때문에 많은 젊은 학생들은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고 유학도 다시 나서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북한 학생들의 경우 북한이 코로나 사태를 극복해도 앞으로 유학에 나설 기회는 엄격하게 제한될 것입니다.

 

북한은 워낙 고립된 독재 국가이기 때문에, 고위 엘리트를 제외하고 해외에서 공부하는 북한 유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북한 유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989년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 로므니아(루마니아), 벌가리아(불가리아), 뽈스까(폴란드)와 같은 동구라파 나라에는 공부하러 온 북한 유학생들이 요즘보다 더 많았습니다.

 

저도 공산주의 독재시절인 1989년에 로므니아의 부꾸레쉬띠 (부카레스트) 대학 영어영문과 1학년을 다니면서 같은 대학을 다니던 북한 유학생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로므니아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가벼운 인사만 건넨다던지 몇 마디 말 정도만 했을 뿐 더 의미 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유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했고, 로므니아말도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그 당시 공대에 다니던 저의 사촌형도 북한 유학생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주변에 다른 북한 유학생들이 없어서 그랬던지 그는 북한 당국의 감시를 그렇게 두려워하진 않았고 로므니아 학생들과 가깝게 지내곤 했습니다. 그 때 그가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니던 모습이 여전히 어색하게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당시 로므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개인숭배도 아주 심했지만, 그래도 독재자의 사진이 들어있는 배지를 달고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로므니아 공대 학생들이 그 북한 유학생에게 살짝 이야기를 해서 가끔 그는 배지를 안 달고 다닐 때도 있었습니다. 그 학생도 다른 북한 유학생들처럼 공부를 아주 열심히 했지만,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유학생들은 거의 만점의 성적을 받아야 북한 정부와 로므니아 정부 장학금을 계속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학금이 끊기고 북한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북한 유학생의 성적이 좀 낮게 나올 경우 주변에 있는 로므니아 친구들이 교수에게 부탁하여 그의 점수를 높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국제 언론은 북한의 인권 유린, 정치 탄압, 식량 위기나 주변 나라들을 위협하는 핵개발 문제에 대해 많은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몇년전 로므니아 공산주의 독재시대 대학을 다니며 북한 유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는 로므니아 신문 기자들은 루마니아 대학생의 입장에서 본 북한 유학생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대학시절 북한 유학생들을 만났던 로므니아 신문 기자들은 당시 북한 유학생들을 보면 공산주의 국가이던 로므니아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므니아는 동구라파 공산주의 국가들 중 독재자 개인숭배, 인권 유린, 정치 탄압과 식량 부족이 가장 심해 북한과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로므니아 독재자이던 차우체스쿠 치하에서 로므니아 주민들은 고통을 겪고 살았지만, 대학생들은 학교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그 어두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은 몰래 서양 록 음악을 들을 수 있었고 나이트클럽도 다녔으며, 경찰이 눈을 감아 주면 암시장에서 미국이나 서구라파의 잡지와 소비재, 특히 음반이나 옷, 화장품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북한 유학생들은 로므니아가 너무 개방적이라 자신들이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고 로므니아 기자들은 말합니다.

 

예를들면, 로므니아 공산주의 독재시대 연극 배우들은 전 국민이 아니라, 관람객 앞에서만 연기했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과 의견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은근 슬쩍 나타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연극의 대본을 조금씩 바꿔 언론 검열을 피해 독재자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유학생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연극의 주제는 항상 김일성과 관련된 것이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북한 유학생들이 공산주의 시절 동구라파에서 독재와 인권 유린이 가장 심하던 로므니아를 개방적인 나라로 생각했다면 북한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현재 북한은 김일성 시대 때 보다 더 엄격한 통제로 고립되어 있으며 북한 젊은이들이 유학에 나설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로므니아는 공산주의 독제체제가 무너진 지 33년 후 유럽연합 회원국인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김정은 정권 하에 인권상황과 정치탄압이 계속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인권 유린, 정치 탄압과 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북한에 과연 동구라파처럼 개혁과  개방의 날이 언제나 올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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