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수필] 한국전쟁 때 파견된 루마니아 간호사들
그렉 스칼라튜 xallsl@rfa.org
2009.02.17
2009.02.17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를 비롯해 전쟁 이후로는 1957년까지 루마니아 적십자사는 같은 소련의 위성 국가이자 공산권 동맹국이던 북한으로 의사들과 간호사 약 220명을 포함한 7개 진료팀을 파견했습니다.
루마니아 진료팀이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파견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루마니아 일간지 “Evenimentul Zilei” 기자들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 두 명을 찾아 그들과 회견했습니다. 엘레나 젤레뉵 (Elena Zeleniuc)과 이와나 크루챠누 (Ioana Cruceanu) 씨는 한국전쟁 때 파견된 후 국제 적십자사가 수여하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 (The Florence Nightingale Medal)을 수상했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된 두 여성은 기자들과 한국전쟁의 추억을 나눴습니다.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왔던 젤레뉵과 크루챠누 씨는 먼 곳에 있는 아시아 나라까지 돌볼 기회가 생기자 아주 젊은 나이에 자진해서 북한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두 여성에 따르면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모두 지원자였습니다. 루마니아 진료팀들은 본국에서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모스크바에서 중국과 북한 국경까지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차로 갔습니다.
젤레뉵과 크루챠누 씨는 한국전쟁의 고통과 파괴의 추억을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두 여성은 한국어는 몇 가지 정도 배웠지만, 북한 사람들과 하는 의사소통은 러시아 말로 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루마니아 간호사들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면서 그 아이들이 자신들을 “어머니”라고 부르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의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17살 때 한반도에 도착한 엘레나 젤레뉵 씨는 유산탄에 맞아 다리를 절단할 뻔했지만, 유럽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26세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루마니아 간호사를 구해준 그 젊은 의사는 전투를 하다 사망했다고 합니다. 부상을 입은 엘레나 젤레뉵 씨는 김일성 전 국가주석에게 훈장을 직접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한국전쟁의 정치적, 사상적 원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남북한 사람들은 정이 많고, 서로 증오하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들에 관한 루마니아 사람의 의견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루마니아 독자의 의견을 인터넷 블로그로 보면 엘레나 젤레뉵 (Elena Zeleniuc)과 이와나 크루챠누 (Ioana Cruceanu)가 한 인터뷰가 일반 사람이 잘 모르는 역사를 밝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인사들 수만 명이 교도소와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루마니아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이럴 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북한으로 파견됐다해도 사실 한반도를 분단시키면서 북한에 루마니아와 다른 소련 위성 국가처럼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는 자체가 그다지 대우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같이 엇갈린 견해가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독자들은 루마니아에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들의 활동이 한국전쟁의 역사적인 의미를 다각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있다는 점을 동의하고 있겠지요.
루마니아 진료팀이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파견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루마니아 일간지 “Evenimentul Zilei” 기자들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 두 명을 찾아 그들과 회견했습니다. 엘레나 젤레뉵 (Elena Zeleniuc)과 이와나 크루챠누 (Ioana Cruceanu) 씨는 한국전쟁 때 파견된 후 국제 적십자사가 수여하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기장 (The Florence Nightingale Medal)을 수상했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된 두 여성은 기자들과 한국전쟁의 추억을 나눴습니다.
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왔던 젤레뉵과 크루챠누 씨는 먼 곳에 있는 아시아 나라까지 돌볼 기회가 생기자 아주 젊은 나이에 자진해서 북한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두 여성에 따르면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모두 지원자였습니다. 루마니아 진료팀들은 본국에서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로, 모스크바에서 중국과 북한 국경까지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기차로 갔습니다.
젤레뉵과 크루챠누 씨는 한국전쟁의 고통과 파괴의 추억을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두 여성은 한국어는 몇 가지 정도 배웠지만, 북한 사람들과 하는 의사소통은 러시아 말로 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루마니아 간호사들은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면서 그 아이들이 자신들을 “어머니”라고 부르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주변의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17살 때 한반도에 도착한 엘레나 젤레뉵 씨는 유산탄에 맞아 다리를 절단할 뻔했지만, 유럽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26세 북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루마니아 간호사를 구해준 그 젊은 의사는 전투를 하다 사망했다고 합니다. 부상을 입은 엘레나 젤레뉵 씨는 김일성 전 국가주석에게 훈장을 직접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한국전쟁의 정치적, 사상적 원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전쟁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남북한 사람들은 정이 많고, 서로 증오하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들에 관한 루마니아 사람의 의견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루마니아 독자의 의견을 인터넷 블로그로 보면 엘레나 젤레뉵 (Elena Zeleniuc)과 이와나 크루챠누 (Ioana Cruceanu)가 한 인터뷰가 일반 사람이 잘 모르는 역사를 밝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인사들 수만 명이 교도소와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루마니아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이럴 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북한으로 파견됐다해도 사실 한반도를 분단시키면서 북한에 루마니아와 다른 소련 위성 국가처럼 인권을 탄압하는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설립하는 데 참여했다는 자체가 그다지 대우를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같이 엇갈린 견해가 나오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독자들은 루마니아에서 북한으로 파견된 간호사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들의 활동이 한국전쟁의 역사적인 의미를 다각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있다는 점을 동의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