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로므니아 티미쉬아라 선언과 민주화의 기본적 원리들
2024.01.02
34년전 1989년 12월 17일 냉전 시대 때 북한과 많이 비슷하던 로므니아 (루마니아) 서부 국경 지대에 위치한 도시 티미쉬아라에서 반공산주의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김일성 전 국가 주석과 긴밀한 우정을 맺었던 로므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인 엘레나는 198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성탄절날 군사 재판을 받고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유혈적 반공산주의 혁명이 차우셰스쿠 부부의 사망으로 끝났다는 것은 로므니아 주민들에 의한 무혈적 혁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즉, 로므니아 사람들은 공산주의 독재의 유산을 제거하면서 변화와 개방, 자본주의, 자유시장과 자유민주주의 정치를 안전하게 정착시키는데 약 25년 동안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티미쉬아라 선언’은 중요한 문서였습니다.
1990년 3월 11일에 작성된 티미쉬아라 선언은 1989년 12월 17일부터 20일까지 공산 독재에 대한 승리를 바탕으로 계속 발전해 나가자는 13개 항으로 구성된 문서였습니다.
‘티미쉬아라 선언’의 저자들은 경제 개혁과 진정한 민주주의 관행 확립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다가오는 1990년 5월 총선에서 전직 공산당 고위간부들 및 보안군 장교의 선거 출마를 일시적으로 금지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즉 국가적 화해가 이루어질 때까지 이들의 공적 생활에서 배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금지 조치는 1990년 5월 총선에서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온 일리에스쿠 (Ion Iliescu)와 다른 전직 공산당 간부들의 정치 지도자 자격을 박탈하였습니다.
티미쉬아라 선언 1항은 혁명이 초창기부터 차우셰스쿠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공산주의는 물러가라!’라는 구호는 혁명 기간 내내 수백 번 외쳐졌습니다. 2항은 로므니아 혁명에 모든 사회 계층이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노동자, 지식인, 회사원, 학생, 심지어는 혁명을 지지하러 온 마을 농민들까지 티미쉬아라 거리와 광장에서 나란히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선언은 사회 계급과 계층 간의 불화를 조장하는 전형적인 공산주의적 지배 방식에 적극 반대했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가 권력을 잡은 것은 '계급 투쟁'이라는 사상 때문이었으며, 마찬가지로 1944년 이후 로므니아 공산주의자들은 한 사회 계층을 다른 사회 계층과 대립시켜 사회를 더 쉽게 공포에 빠뜨리기 위해 사회를 분열시켰습니다. 선언은 공산주의 독재 시대 이후 로므니아의 출발점은 이 모든 사회 계층이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억압을 받았으며, 어느 누구도 다른 계층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선언 3항은 젊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혁명에 참여했다고 했습니다. 희생자 명단은 불완전하지만 이 점에서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선언 4항은 로므니아 사람들과 함께 소수민족인 마쟈르 (헝가리)인, 독일인, 쓰르비아 (세르비아)인들도 혁명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선언은 국수주의, 즉 극단 민족주의를 확실하게 거부하며 새로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모든 소수민족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선언 5항에 의하면 혁명 초기인 12월 16일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 중 하나는 ‘우리는 자유 선거를 원한다!’였습니다. 선거의 자유와 정치적 다원주의는 티미쉬아라 시민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 중 하나이며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입니다.
선언 6항은 공산주의 독재가 금지시킨 전통적 정당을 소생시켜야 하며 그 정당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정당들의 지도자들은 제2차 대전 직후 목숨 걸고 로므니아를 구 쏘련 (소련)의 위성국가로 바꾸는 것에 저항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은 공산주의 정치범관리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사망했습니다.
선언은 또한 공산주의 시대 때 상황이 열악한 보건 및 위생과 같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즉각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선언은 경제적 다원주의 없이는 정치적 다원주의도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선언은 주민들이 비 효율적인 공산주의 경제의 민영화를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했습니다. 국유 기업의 민영화, 외국인 직접 투자와 자유시장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노동자와 다른 주민에게 동등한 번영의 기회가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언은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망명한 로므니아 사람들을 독재 시대 때 ‘반역자’라 불렀지만 그들이 해방된 로므니아로 귀국하여 나라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공산주의 시대 때 해외에 살고 있던 많은 로므니아 사람들은 정치적 박해와 장기간의 투옥으로 인해 로므니아를 떠났습니다. 1990년대 초 로므니아 망명자 중에는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수백 명의 뛰어난 교수들, 서구의 유수 기업에서 존경받는 수천 명의 전문가들, 최첨단 기술 자격을 갖춘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언은 그들이 조국에 살고 있는 로므니아인의 동포이며,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의 역량과 유럽적 사고 방식, 물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로므니아 문화는 망명자 문화가 다시 통합된 후에야 완성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티미쉬아라 선언의 제안과 달리 전 공산당 고위간부들과 보안국 간부들이 개방된 로므니아 정치와 기업, 경제에 지장 없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1980년대말에 공산당 외 주민들을 지도할 만한 정치지도력이 없었기 때문에 고위간부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고 로므니아의 새로운 자본가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때문에 로므니아의 전환기는 다른 동구라파 나라보다 더 오래 걸렸고 더 어려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 때 로므니아와 많이 비슷하던 북한은 티미쉬아라 선언을 교훈 삼아 배울 만한 것이 많습니다. 특히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국유 기업 민영화, 자유시장, 자유투표와 다른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필요합니다. 북한 인민들끼리 차별하는 성분제도를 없애야 합니다. 또한 김씨 일가 독재를 망명한 한국에 정착한 3만4천 여명 탈북자들, 또한 미국,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반역자’로 모욕하지 말고 앞으로 북한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포용해야 합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