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유산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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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1일은 유명한 구소련 출신 안드레이 사하로프 탄생일 백주년 기념이었습니다. 사하로프는 소련의 핵물리학자이자 인권운동가, 반체제인사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사하로프는 1921년5월21에 태어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직전 1989년 12월14일에 사망했습니다.

구 소련은 북한처럼 ‘굴라크(Gulag)’라는 많은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곤 했습니다. 사실 북한의 김일성 전 국가주석은 소련의 굴라크와 같은 정치범관리소를 설립했습니다. 북한은 아직까지 120,000여명의 정치범이 수감되어 있는 여섯 곳 정치범관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976년 2월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다른 4명의 소련 반체제인사들과 함께 소련 내 모든 정치범들의 사면을 호소하는 공개서한을 소련 당국 및 25차 소련 공산당대회에 참석중인 대표단들에 발송했습니다. 반체제인사에 대한 통제, 탄압과 처벌이 심각하던 전체주의적 독재국가이던 소련에서 이러한 행위는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하로프는 소련 핵무기 초기 개발자 중 한명이었습니다. 사하로프는 핵물리학자로서 소련 최초의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사하로프는1948년부터 1968년까지 약 20년 동안 수소폭탄 연구를 했고 다른 소련 학자들과 함께 소련 핵무기 계획에 참여해 소련 최초의 수소폭탄을 설계했습니다. 사하로프의 핵무기 개발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소련 당국은 그에게 사회주의노력영웅 훈장을 3차례나 수여했고, 스탈린상과 레닌상, 레닌훈장까지 수여했습니다.

하지만 사하로프는 1960년대 무기 개발에 회의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소련을 개방시키고, 소련 주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인권운동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사하로프는 그전에 소련의 핵무기를 개발한 핵 물리학자로서 받은 모든 특권을 버리고 1960년대부터 탄압과 감시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하로프는1970년 다른 반체제인사들과 함께 '모스크바 인권위원회'라는 인권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사하로프는 1974년에 소련 정치범의 날을 만들었고, 1977년 소련 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등 인권활동을 지속했습니다.

구 소련은 1973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또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국제규약’을 비준했습니다. 하지만 명목상만 그렇고, 소련 주민들은 그 규약들의 본문과 내용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뉴욕에 위치한 미국 인권보호 비정부기관들은 사하로프와 다른 반체제인사들과 전화통화로 소련 주민들이 볼수 없었던 그 규약들과 유엔인권선언을 로씨야 (러시아) 말로 읽곤 했습니다.

저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소련의 위성국가이자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던 로므니아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1989년까지 19년 동안 로므니아에 살았습니다. 로므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김일성 국가주석과 가까운 우정을 맺었습니다. 또한 북한식 독재자 신격화와 ‘주체 사상’에 첫눈에 반한 나머지 로므니아를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로 변화시키려 했습니다. 당시 공산주의 시대에는 해외여행도 거의 불가능했고 정치탄압, 인권유린과 식량부족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살았습니다. 바깥세상의 소식을 유일하게 알아낼 수 있는 수단은 외국 라디오 방송, 즉 ‘자유유럽방송,’ 미국의 소리,’ 영국 방송사 BBC나 서독의 ‘도이체 벨레’였습니다.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사하로프에 대해서 알게 되고 사하로프를 붉은 제국이던 소련과 공산주의에 의한 정치탄압과 인권유린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반체제인사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세계도 소련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명예를 박탈당하고 자신의 특권을 버리며 많은 희생을 감수했던 사하로프의 인권 옹호활동을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사하로프는 197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결국 사하로프가 주도하던 반체제인사의 인권활동을 포함한 여러가지 이유로 의해 소련은 1980년대 중반부터 개혁과 개방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주도하던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던 고르바초프의 집권으로 개혁개방의 시대가 도래하자 사하로프는 인권운동을 재개하였으며 사망하기 직전인1989년 소련 최고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또한 유럽의회에서는 1988년 그의 이름을 딴 사하로프상을 제정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버마의 아웅산 수치를 포함한 수많은 자유의 전사와 인권운동가에 그 상을 수여했습니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냉전시대 때 소련처럼 주민들의 인권, 복지와 인간안보를 희생시키면서 이웃나라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핵무기를 개발해 왔습니다. 붉은 제국이던 소련보다도 북한 당국에 의한 통제, 탄압과 처벌은 더 심합니다. 소련의 핵물리학자로서 인권운동가와 반체제인사이던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유산을 생각하며, 북한에도 이러한 인사들이 존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구 소련과 다른 공산주의 독재국가들의 쇠퇴한 역사를 돌아보면 독재정권은 절대로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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