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토요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신문 기자 클로디아 로제트 여사는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제트는 1989년 6월 4일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를 벌이다 중국 군인이 쏜 총알에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된 천안문 광장에서 목숨을 걸고 보도를 했습니다. 로제트는 이어 1994년에는 로씨야 (러시아) 숲속에 위치한 강제 수용소를 직접 현지 조사하면서 북한 당국이 파견한 북한 벌목꾼과 관련한, 신기원을 이룬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깊이 우려한 클로디아 로제트의 보도로 강제노동을 겪어 온 북한 해외 파견 근로자 이슈는 지난 30년 가까이 세계적으로 조명을 받았습니다.
클로디아 로제트는 공산주의 독재를 무너뜨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선 기자였습니다. 1989년은 반 공산독재 혁명의 해였습니다. 그 해 바깥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북한 주민들만 자유의 꿈을 꾸지 못했지만, 중국까지도 자유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34년 전 1989년 4월 14일 북경의 천안문 광장에서 중국 지식인과 대학생이 주축이 되어 자유, 개방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천안문 광장의 시위 사태는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의 사망을 계기로 시작됐습니다. 후 전 총서기는 개혁과 개방을 옹호했지만 이를 반대하던 중국 공산당 보수파 때문에 총서기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후 전 총서기가 1989년 4월 사망하여 그를 애도하기 위해 천안문 광장에 모인 중국인들은 자유, 개혁과 개방을 위한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1989년 6월 4일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천안문 광장에 모였던 많은 젊은이가
부상하거나 사망했습니다. 클로디아 로제트와 다른 외국 특파원들이 그 날 밤 중국 당국이 자행한 대학살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천안문 사건으로 인해 민간인 240여명이 사망하고 7천
여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로제트와 같은 외국 특파원과 비공식 소식통에 의한 정보에 따르면 민간인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지 34년이 지난 지금 경제적 개혁과 개방을 어느 정도 추진해 왔지만, 정치적 사회적 개혁과 개방은 아직까지, 특히 코로나-19 예방 명목으로 거부해 왔습니다. 반면 소련이 와해된 1989년 동유럽인은 자유로 향한 길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동서독 젊은이들이 망치를 들고 동서 분단을 상징하던 독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체스꼬슬로벤스꼬에선 평화적인 변화가 있었고, 로므니아의 경우 젊은이 수천 명이 희생하면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의 공산당 체제를 유혈 혁명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1989년 12월 유혈 반공산주의 혁명 때 부꾸레쉬띠 (부카레스트)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1학년이었습니다. 시위를 하며 중국어학과 대학생들은 '천안문을 잊지 말라'라는 말을 대학교 벽에 낙서했습니다. 역시 로므니아 대학생들, 노동자들과 군인들은 천안문 민주주의 시위를 교훈 삼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1990년대 동유럽 나라들은 쉽지 않은 전환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마쟈르, 뽈스까, 흐르바쯔까 (크로아티아), 체스꼬 (체코 공화국), 슬로벤스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리뜨바 (리투아나아), 라뜨비야 (라트비아), 에스또니야 (에스토니아), 로므니아와 벌가리아 (불가리아)는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을 향한 개혁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천안문 민주화 운동 34년 후,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34년 후, 정치, 사회, 경제 개혁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일하게 남은 냉전시대의 유물은 이제 북한밖에 없습니다.
권력세습이 두 번이나 이뤄진 김씨 일가의 최후의 목표는 정권 유지입니다. 북한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주민을 굶기고 인권을 탄압하면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부족한 자원을 많이 낭비합니다. 후기 공산주의, 후기 산업사회 왕조적 정치를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김씨 일가는 정치.경제.사회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느 날 동유럽 독재 정권들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