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야기 안테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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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 이후로 예전보다 바깥세계의 정보는 북한으로 더 많이 유입되었습니다. 북한 인민들은 몰래 외국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처음에는VHS 테이프로, 나중에는 CD-ROM, DVD, USB, 요즘은Micro-SD카드를 통해 미국, 중국, 로씨야 (러시아)와 한국 영화, TV드라마와 음악을경험합니다. 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이지만, 북한의 공식적, 비공시적 정보환경은 계속 변화되고 있습니다.

약 15년까지 만해도 북한 인민들은 중국에서 밀수입한 ‘야기 안테나’를 통해 한국 방송을 몰래 보곤 했습니다. ‘야기 안테나’라는 것은 생선 뼈 형태의 안테나이며 한국에서도 7-80년대에 일반 안테나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야기 안테나’는 지상파 수신만 잡히며 위성안테나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에서 한국 TV를 보다 적발되면 구속까지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인민들은 ‘야기 안테나’를 밤에만 올려 사용하곤 했습니다.

북한에서 안테나를 설치해 한국 TV를 보려면 기술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북한의 TV수신은 유럽에서 사용하는 PAL 시스템이지만, 한국에서 사용하는 수신은 미국과 같이 NTSC라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야기 안테나’를 이용했을 때 한국 TV 수신을 직접 받아 한국의 TV방송을 보려면, 북한에서 만든 PAL시스템으로는 안되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든 PAL과NTSC 시스템을 같이 볼 수 있는 다중 시스템 TV로 시청해야 했습니다. 또 몇가지 부품만 가지고 북한에서 사용하는 일본에서 만든 TV까지도 NTSC 수신을 볼수 있겠금 바꿔놓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 인민들이 사용하는 ‘야기 안테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옛날 공산주의 시절의 로므니아 (루마니아)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로므니아의 상황은 다른 동유럽 공산권 국가중 북한과의 공통점이 가장 많았습니다. 과거 로므니아의 악명 높은 공산주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서는 전기를 아껴 쓰기 위해 하루 2시간밖에 방송되지 않던 TV중앙방송국이 방영하는 독재자와 그의 아내를 숭배하는 독주회, 연주회와 음악회를 반복해서 시청해야 했고, 미국이나 서유럽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를 보더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옛날 고전 영화만 봐야 했습니다. 또한 로므니아 사람들은 그렇게 열정적인 축구팬임에도 불구하고 1982년 스페인 축구 월드컵 때부터 독재자가 중계권료를 내기 아까워했기 때문에 로므니아 TV방송은 경기를 방송하지 않았습니다. 월드컵 뿐만 아니라, 1980년대 올림픽경기, 동계올림픽이나 유럽컵 대회도 방송되지 않았습니다. 이웃나라들은 같은 공산주의 독재 국가이지만 중계 권료를 내고 이러한 경기를 방송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로므니아 국경에서 멀지 않은 신호를 받을 수 있는 장소에서 로므니아 사람들은 특수 안테나를 만들어 마쟈르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벌가리아 (불가리아)나 쏘련 (소련) TV방송을 통해 월드컵 경기를 보곤 했습니다.

그 때 화질은 좋지 않아도 외국 방송이 나오는 집은 인기가 좋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 이웃사람들까지 모두함께 축구 경기를 보곤 했습니다. 또 아파트건물지붕위에서 흑백TV와 특수안테나를 설치하고 의자에 앉아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함께 축구 경기를 시청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한 그당시 루마니아 서부 국경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서독TV까지 시청할수 있었는데 어렸을때 부모님과 함께 서부에 사는 부모님 친구의 집을 방문했었는데 거기서 처음 서독 TV 방송을 시청할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자유로이 해외 여행도 못하고, 자유민주주의 나라의 TV방송을 못보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은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것과 같은 행운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동남부지방에서는 특수 안테나를 설치해 벌가리아 방송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수안테나는 단순하게 철로 만든 선 모양의 지상파 방송으로 화면이 약한 벌가리아 TV 는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올 경우 더 잘 보였습니다. 지상파 수신은 수평으로 먼곳까지 가지 못하고, 우주로 직선으로 뻗기 때문에 지상파 신호를 멀리까지 보려면 중간중간에 그신호를 받아 계속 연결하는 중계국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중계국이 없을 경우 수평으로 나가는 TV 신호는 멀리까지 전파되지 않지만, 날씨가 흐릴때는 어느정도 구름에 반사되서 더멀리까지 전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가 왔을 경우 외국 TV방송을 더잘 볼수 있었습니다.

당시 로므니아나 다른 공산권 국가에서는 외국TV방송을 보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보위부와 일반경찰들은 모르는 척눈감아 주고 그들도 외국방송을 통해 축구경기를 보곤 했습니다. 안테나를 전문으로 만드는 기술자들도 있었고, 그 당시 로므니아의 수도인 부꾸레쉬띠 (부카레스트) 아파트건물위에 있는 수만대의 선모양 안테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엄격한 공산주의 독재 정권하에서도 로므니아 사람들은 특수 안테나를 설치해 다른 공산권 나라 방송이나 서독의 방송까지 숨김없이 보곤 했습니다.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외부노출의 위험을 무릎쓰고 ‘야기 안테나’로부터 외국 라디오 방송, VHS 테이프, CD-ROM, DVD, USB나 Micro-SD카드를 통해 몰래 접촉하려는 북한 인민들은 냉전시대 때 로므니아 사람들처럼 한국을 포함한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습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