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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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라튜]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9 북한이탈주민 정착경험사례 발표대회에서 이은영 씨가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김일성 주석 저작집 15권 620페이지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자립적 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를 닦아놓았습니다. 원료도 자체의 것이고 기술도 자체의 것이고 민족간부도 자체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공업은 완전히 제 발로 걸어갈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는 영원히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살수 있는 확고한 경제적 토대를 가지게 되였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냉전시대 직후 구쏘련(구소련), 중국과 동구라파 공산권 국가들의 지원에 의지하던 북한의 경제는 무너졌습니다. ‘고난의 행군’의 비극적 결과는 북한 인민들의 희생이었습니다. 1990년대 북한 인민들은 약 60여만명에서 3백만명까지 대아사와 기근에 의한 질병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많은 북한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 때, 또 그이후로 북한을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18년 전인 2004년 7월 윁남(베트남)에 체류 중이었던 탈북자 468여명이 두 차례에 걸쳐 한국정부가 마련한 특별기편으로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 때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들 중 60% 이상은 여성과 어린이들이며 대부분 중국에서 동남아로 불법입국한 지 6개월 이상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한국 전쟁 이후 한국에 정착한 가장 큰 규모의 탈북자 집단이었습니다.

 

한국 통일부 통계 자료를 보면 탈북자들은 1998년부터 2022년3월까지 33,826명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그들 중 여성 비율이 약 80퍼센트 정도 됩니다. 김정은 정권 초기 때부터 특히 북중 국경지대에 심각해진 단속과 통제 때문에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수는 1년에 2,700명에서 1,500명이나 1,300명까지, 약 50퍼센트로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2020년 이후 지난 2년반동안 북한 내와 국경지대 코로나19  방역을 명목으로 인한 통제 때문에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수는 많이 줄었습니다. 결국 2020년에 229명, 2021년에 63명, 2022년1월부터3월까지11명만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의 땅을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재 국가의 인권 유린과 중앙계획 경제에 의한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 이상 못참는 사람들의 대안은 반란 또는 망명 두가지밖에 없습니다. 냉전시대에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면서 싸우는 동구라파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뽈스까 (폴랜드)나 로므니아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애국자들은 산이나 숲속에 숨어 1950년대까지 총을 들고 비밀 경찰과 대립했습니다.

 

마쟈르 (헝가리)에서도 1956년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1968년 무혈 반공산주의 혁명이던 ‘쁘라하 (프라하)의 봄’때 체스꼬슬로벤스꼬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도 개혁 정책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 동구라파 독재자들의 압도적인 힘 때문에, 공산주의를 반대하던 반란군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들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비밀 경찰의 고문을 당해 희생됐고, 사망하지 않아도 공산주의 강제 노동 수용소나 교도소에서 수십년동안이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결국 공산주의 독재 체제 하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희망은 오직 망명의 길에 나서는 것 뿐이었습니다.

 

로므니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므니아를 떠날 수 있는 방법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로므니아 내 외국 대사관에 이민을 신청하는 것, 둘째,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가는 것, 셋째, 해외 출장이나 해외 여행을 가서 다시 귀국하지 않고, 외국 거주 신청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 방법은 모두 위험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결국 1980년말에 와서는 외국에서 살려고 하는 로므니아 사람들에게 남은 방법은 국경을 불법으로 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국경을 지키는 로므니아 경비대는 망명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총으로 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국경을 넘으려다 총격에 희생되었습니다. 수영을 잘하는 젊은 사람들은 다뉴브강을 건너 유고슬라비아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익사하거나 총에 맞아 사망한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또 사람들은 서유럽행 열차의 화물칸 속에 숨어 망명을 시도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방법도 매우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국경에서 붙잡히지 않더라도 화물칸 안의 공기가 나빠 숨을 제대로 못쉬고 사망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위험과 어려움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졌던 로므니아 사람들은 망명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유명한 학자, 예술가, 음악가, 운동 선수와 감독들이 외국에서 반공산주의 운동을 하면서 차우셰스쿠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탈북자들의 경우 특히 요즘 탈북의 길은 너무나 위험하고, 북한에 남아 있는 탈북자의 가족들은 예전보다 더 힘들어졌습니다. 또 북한에서 태어나 공산주의 독재 체제하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갑자기 민주주의, 자유 시장과 경쟁의 사회에 적응하기란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은 같은 나라인 한국으로 입국하면, 적응 과정이 쉽지 않아도 결국 같은 민족의 생활 양식에 익숙해지게 됩니다. 탈북민들이 한국 사람들과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에 정착하는 것은 남북한 통일을 위한 중요한 연습 과정입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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