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유럽소풍’ 30주년 기념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9.08.20

‘소풍’이란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야외에서 자연을 즐기며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고 다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소풍이란 단순한 것이지만, 30년 전1989년8월19일 당시 공산권 국가이던 마쟈르 (헝가리)의 도시 소프론에서 일어났던 한 소풍이 유럽, 또는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소프론이라는 도시는 마쟈르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오스트리아의 국경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1989년 마쟈르를 포함한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에서는 개혁과 개방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89년 6월 27일 당시 공산 국가이던 마쟈르의 외무부 장관 귤라 호르느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오스트리아의 외무부 장관 알로이스 모크는 회담을 하고 마쟈르와 오스트리아, 즉 공산주의 독재와 자유민주주의를  가르고 있는 두 나라 국경 철조망 일부를 상징적 행위로 잘라냈습니다. 그리고  귤라 호르느 마쟈르 외무부 장관은 이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순간은 저의 외교관 생애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오스트리아와 가까워지고, 마쟈르와 오스트리아를 갈라놓은 철조망 한 부분을 없애며 미래를 바라보는 창문을 열었습니다.  유럽을 분단시킨 철조망과 장벽이 어느날 사라지길 기대해 봅니다.” 그 당시 마쟈르 외무부 장관이 말한 소망은 1989년 말 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너지면서 몇 개월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체제의 탄압을 겪던 동유럽과 자유민주주의 세계이던 서유럽과의 분단이 마쟈르에서 이뤄진 소풍으로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8월 19일 마쟈르 도시 소프론에 접한 오스트리아 국경이 3시간 동안 개방되었습니다.  그것은 ‘유럽소풍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날은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던 마쟈르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국경 검문소가 3시간동안 개방되면서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었고 같이 소풍을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유럽의 분단을 극복하려는 ‘유럽 소풍’의 소식을 듣고 당시 공산권 국가이던 동독 사람들은 이소풍을 자유 세계로 탈출하는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00명이 넘는 동독 사람들은 같은 공산권 국가이던 마쟈르와의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와 마쟈르 국경검문소가 3시간동안 개방되는 ‘유럽 소풍’ 때, 마쟈르와 오스트리아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던 서독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89년 8월 19일 마쟈르 도시 소프론에서 있었던 소풍으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이 1989년 10월 동독과 서독, 공산주의 독재 세계와 자유민주주의 세계를 분단시킨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1989년10월과 11월 불과 두달 사이, 독일은 분단 40년 만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다른 동구권 공산주의 나라들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과정은 오스트리아와 마쟈르리100, 체스꼬슬로벤스꼬 (체코슬로바키아)와 뽈스까 (폴랜드)가 수만 여 동독 피난민들에게 입국을 허가하고 이들이 쉽게 민주주의 국가이던 서독으로 망명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게나 많은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망명하면서 동독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1989년 10월 수천여 동독 젊은이들은 망치를 들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마쟈르, 또는 로므니아(루마니아), 뽈스카 (폴란드)까지 포함하여 모든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은 30년 전 1989년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했고 유럽연합과 미국이 주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나토, 즉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습니다.  개혁, 개방과 인권 보호까지  현대 국제사회의 기본적 원리를 아직까지 거부하는 공산주의 독재 세계의 유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북한도 이웃 나라를 위협하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기 보다는 주민들을 더 이상 탄압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참여하기 위한 변화의 길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30년 전 1989년8월19일 ‘유럽소풍을’ 생각하면서 김씨 일가의 동맹국인 중국을 떠올리게 됩니다. 중국은 탈북자들을 ‘불벅경제이주자’라 주장하며, 그들을 계속 강제북송 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1951년 유엔 난민조약 가입국입니다. 1951년 유엔 난민조약에 의하면 ‘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곳으로’ 송환되는 난민들은 정치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탈북자들이 강제북송 당하게 되면 고문, 살인, 구속 등 박해의 우려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30년 전 1989년8월19일 마쟈르 정부가 동독 난민들을 보호한 것을 교훈 삼아 중국도 탈북자들을 정치난민으로 보호하게 되면 북한에서도 ‘유럽소풍’처럼 큰 변화가 올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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