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북한의 화폐개혁과 시장경제 탄압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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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북한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후로 많은 북한 주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시장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에서는 전임 김정일 정권 때보다 비공식적 시장 활동이 더 활발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유재산과 법적 보호 없이 종합적인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기는 불가능합니다. 또한 북한의 장마당, 농민시장, 암시장을 거론한다면 시장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10년 전 북한 당국의 화폐개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9년 말 북한은 전격적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화폐개혁 이전 북한 원화의 가치는 미국 1달러당 135원이었는데, 화폐개혁에 의해 기존의 북한 원화 가치를 100분의 1로 줄였습니다.  당시 화폐개혁은 북한의 국가 채무나 교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북한의 장마당에서 이뤄지고 있는 초기 시장경제를 억제하기 위한 대책이었습니다.

화폐개혁이란 경제적으로 한 국가에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독재자 로베트 무가베의 비합리적인 금융, 경제정책에 의해 짐바브웨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짐바브웨 당국은 ‘짐바브웨 달러’의 가치를 100억대 1로 줄였습니다. 그 후 무가베는 37년동안 독재정권을 유지하다 2017년 쿠데타에 의해 권력을 잃었고 2019년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화폐가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는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경제적 의미가 거의 없습니다.  이를테면, 2008년 후반부터 2009년 전반까지 세계 금융 상황이 불안해지면서 한국 원화의 가치가 떨어졌지만, 덕분에 한국의 수출품의 가격도 떨어져 수출량이 증가하게 되어 원화의 가치가 다시 상승하고 약 1-2년 후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현재 미국 1달러 당 한국 원화의 가치는 1천185원이며 일본 화폐로 약110엔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국 원화의 가치나 일본 엔화를 10배나 100배로 줄일 필요도 없습니다.

10년 전 북한의 화폐개혁의 목적은 소규모의 초기 시장경제를 탄압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전부터 북한의 국가배급제도가 무너졌고 그 결과 식량난에 의해 많은 북한 주민이 희생되었습니다.  북한은 시장경제에 의한 경제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주의 독재 국가이지만, 국가배급제도에 더이상 의지할 수 없는 주민들은 북한의 곳곳에서 생긴 장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시장경제 활동을 통해 생존할 방법을 배웠습니다.

국가배급제도에 의지할 때보다 장마당에서 이뤄진 시장경제 체계에 의지하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10년전 화폐개혁의 목적은 이러한 시장경제 활동에 의한 소규모의 경제성공을 억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92년 화폐개혁이후 북한 주민들은 북한 화폐에 대한 신뢰를 잃어 비공식적으로 저축을 하려면 북한 원화보다는 미국 달러, 일본엔이나 최근 중국 위안화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10년전 북한에서 시장경제 활동을 했던 북한 상인들은 2009년말 화폐개혁 때문에 많은 손해를 봤습니다.

주민들을 탄압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북한 정권의 딜레마는,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경제를 소생시키기 위해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이면 공산주의 독재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딜레마에는 ‘강성대국’을 주창한 김정일 정권도 처해 있었고, ‘병진노선’을 추구하는 김정은 정권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가 무너진 지 30년이 지났고, 동유럽 나라들은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여 경제를 소생시켜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인권을 보장하고 시장경제에 의해 움직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정권들은 정치적 경제적 탄압에 의해 주민들의 생활이 무척 어려운데도 항상 ‘밝은 미래’에 대해 연설합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에 북한과 상황이 많이 비슷한 유럽 국가는 로므니아(루마니아)였습니다.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국민들을 탄압하고 굶기면서도 밝은 미래를 약속하며 자신의 정권을 ‘황금시대’라 명명했습니다.  1970년대와 80 년대 로므니아 정부는 외국은행으로부터 돈을 많이 빌려 중공업에 투자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수도 부꾸레쉬띠(부카레스트)에 커다란 건물을 짓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외자가 필요했습니다. 외채를 갚기 위해 로므니아는 농산물과 식료품을 해외에 수출해야 했고, 외국산 소비제 수입을 끊어버렸습니다. 그 여파로 일반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빵, 우유, 식용유나 계란과 같은 기본 식료품을 사려고 일주일에 몇번씩 새벽부터 가게 앞에서 줄을 서야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주민들의 고통과 노력으로 로므니아의 외채를 다 갚았고, 주민들은 이제 먹을 것이 좀 더 생기고 생활 수준이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식량난과 인권유린은 멈추지 않았으며 로므니아 국민의 생활 수준 또한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로므니아에서 반공산주의 유혈 혁명이 일어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사형을 당하고 공산주의 독재 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지고 말았습니다.

김정일 정권 하에 북한의 ‘강성대국론’도 공산주의 독재 시대의 ‘황금시대’라는 알맹이 없는 외침처럼 주민들의 생활 수준 개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김정은 정권 하에 ‘병진노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김정일 정권보다 주민들의 시장활동을 더 심하게 탄압하진 않지만 종합적인 경제, 정치, 사회 개혁과 개방을 추진할 의도를 보이진 않습니다. 북한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주민들이 시장경제 활동과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생활을 개선할 희망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당국의 지시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생기는 희망은 독재 정권의 적이기 때문에, 10년 전 2009년 화폐개혁의 초점도 시장경제 활동보다는 북한 주민들이 가질수 있는 희망을 없애는 데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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