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동유럽 나라의 음력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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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동안 여러 기념행사가 세계 곳곳에서 많이 열렸습니다. 2월13일 금요일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눈과 얼음의 잔치인 제21회 동계올림픽이 개막되었습니다. 2월 셋째 월요일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19세기에 일어났던 남북전쟁 때 미국 대통령이던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는 대통령의 날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날을 계기로 워싱턴과 링컨 대통령을 비롯해 사실 모든 미국의 대통령과 미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2월14일은 또 발렌타인데이였습니다. 이날 연인들은 서로 초콜릿, 꽃과 선물을 주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북한은1976년 2월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정식 공휴일로 정했고 1995년 2 월 53회 생일을 맞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지정하면서 생일인 2월16일과 그 다음날인 17일을 휴일로 정했습니다. 2월 16일 북한에서는 항상 김 위원장의 생일로 북한 전 지역에서 축하 행사가 있습니다. 물론 살아 있는 지도자의 생일을 그렇게 화려하게 지내는 것은 지도자 개인숭배를 바탕으로 하는 공산주의 독재국가들의 특징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가장 중요한 행사 중에는 또 호랑이해를 예고하는 설날이 있었습니다. 남한의 설날과 같은 명절에 볼 수 있는 한민족의 대이동만 보더라도 이런 명절은 수 많은 남한 사람들에게 가족과 고향, 어린시절의 추억들을 찾으려는 의미있은 전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남한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때문에, 지난 반세기동안 급속한 경제발전을 해오면서 일반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그만큼 향상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은 명절에 고향으로 갈 때 자가용을 타거나 남한의 KTX이라는 고속열차를 포함한 편리하고 현대적인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남한과 다릅니다. 중국이 세계3위경제강대국이고 일반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많이 좋아졌지만, 미국, 유럽연합, 남한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과는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이번 설날은 경제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인 후 지난 20년동안 놀라운 경제발전을 해온 중국에서도 예전처럼 크게 지냈습니다. 국제언론에 따르면 이번 설날 5억명 중국인들이 고향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비행기를 타고 고향을 찾아간 중국인들은 2천900만 명, 기차를 이용한 중국인들은 2억천만 명, 82만대 버스를 탄 중국인들은 3억 명이나 되었습니다.

물론 중국에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선진국만큼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일반 중국인들이 몇시간씩 줄을서 표를 사고 자리가 없어 30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서서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시아 나라들이 신정, 성탄절이나 발렌타인데이와 같은 서구의 풍습과 명절을 받아드렸지만, 세계화 시대에도 설날과 같은 동양의 명절을 서양에서, 특히 동양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에서도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1989년말까지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던 루마니아에서는 음력으로 따지는 설을 센다는 것 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나 요즘 루마니아 사람들은 해외 여행을 많이 하고 중국 사람들이 루마니아에 많이 살기때문에 설날을 중요한 행사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루마니아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후 수도인 부쿠레쉬티에도 다른 나라의 도시처럼 "China Town," 즉 중국인들이 사는 동네가 생겼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차우체스쿠 시대에 중국과의 경제와 문화 교류가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반공산주의 혁명이전 루마니아 수도에는 중국 식당이 두군데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리사까지 포함하여 그 두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중에는 중국인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다른 유럽 도시와 비교하면 부쿠레쉬티의 중국식당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개방 후 지난 20년동안 많은 중국 사람들이 루마니아로 이민을 왔고, 중국식당도 몇십군데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수만명의 중국인들은 왜 루마니아로 이민을 갔을까요? 이유는 두가지로 볼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루마니아와 중국의 경제와 문화 교류는 70년대초반부터 활발했습니다. 그당시 중국인들은 루마니아 영화 관람을 통해 아름다운 루마니아의 풍경을 볼 수 있었고, 루마니아에서 만든 냉장고와 칼라 텔레비전은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좋았으며, 중국 농장에서는 루마니아에서 만든 비료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루마니아에서 만든 강철까지 중국으로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대 루마니아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공산주의 독재 정부의 명령에 의해 중국산까지 포함해 수입 제품은 루마니아 가게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후반까지는 루마니아 사람들도 중국산 제품을 잘 알고 좋아했습니다. 당시 루마니아는 미국, 서유럽, 홍콩, 대만, 일본이나 한국으로부터 질이 높은 제품을 수입하지 않고, 주로 공산주의 국가로부터 질보다는 값이 싼 제품만을 수입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초반까지 루마니아에서 수입품을 구할 수 있을 당시 인기가 가장 좋은 수입품은 다른 공산국가 제품보다는 비교적 질이 좋은 중국제와 동독제였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중국제 장난감, 중국산 초콜릿, 땅콩과 파인애플 통조림 등을 많이 즐겼습니다.

루마니아로의 이민을 정한 둘째 이유는 중국인들이 조국에서 찿을 수 없는 경제 기회를 잡기 위한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자유 시장 경제의 기본적인 원리를 빨리 배우고 열심히 일해서 루마니아에서 성공한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의 성공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루마니아로 이민을 오기 시작한 1990년대 초 루마니아에는 공산주의 독재 시대의 상처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실제 루마니아의 모습은 중국에서 상영했던 루마니아 영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다뉴브강의 루마니아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시대의 외화벌이를 위해 루마니아산 식료품을 많이 수출했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식량 부족을 겪기도 했습니다. 1980년후반 루마니아 가게의 진열대와 선반들은 비어 있었고, 전등이 부족해 밤 도시의 길은 너무나 어두웠고, 도로 상황은 매우 안좋았습니다.

그러나 루마니아로 이민온 중국인들은 과거의 식량과 소비재 부족을 기회삼아 수십개의 가게를 만들며, 중국산 소비제를 팔기 시작하여 기업열이 강한 루마니아 사랍들과 함께 많은 중국인들이 루마니아 자유 시장 경제의 개척자로 성공했습니다. 루마니아의 경제가 개방되면서 소비재 수입량도 본격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중국산 옷, 신발, 땅콩이나 버섯 통조림은 품질이 괜찮으면서 다른 나라에서 만든 같은 제품보다 가격이 싼 편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시대에 소비재 부족때문에 고생하던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소비재를 제공하면서 성공한 중국인들이 많았습니다.

루마니아에서 2010년 설날을 기념하는 중국인들을 생각해보면 공산주의 독재 체제에 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자유 시장 경제 개혁은 기본입니다. 위기를 기회삼아 개척해 나가면 과거의 어려움을 현재의 이익으로 바꿔 놓을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