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전 1989년 12월 김일성 전 국가 주석과 긴밀한 우정을 맺었던 로므니아 (루마니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되었습니다. 차우셰스쿠 독재자 부부가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되기 전, 당국의 피비린내 나는 억압으로 인해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혁명은 종교의 자유를 원하던 주민들이 일으켰습니다. 12월 14일, 라즐로 퇴케시 (László Tökés) 목사를 퇴거시키라는 법원의 명령을 이행하려는 당국의 의도를 알게 된 개혁교회 교구민 30-40명이 로므니아 서부 도시 티미쇼아라에 있는 목사의 집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역 사회안전성 (Miliția)의 수장은 더 이상의 긴장을 피하기 위해 퇴거를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12월 16일,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는 국가안전보위성 (Departamentul Securitǎții Statului)과 사회안전성에 질서를 재확립하고 퇴케시 목사를 퇴거시키라고 명령했습니다. 정권 요원들은 퇴케시 목사의 집 주변에 모여 반 차우셰스쿠 구호를 외치는 수백 명의 시위대의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정권 요원의 개입으로 폭력적인 충돌이 발생했고, 사람들이 모여 차우셰스쿠의 초상화와 붉은 깃발을 찢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내 중심가의 상점 창문을 깨는 등 불안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 결과 최루탄이 사용되었고 여러 시위대가 체포되었습니다. 퇴케시 목사는 다음 날 퇴거당했습니다.
하지만 시위대를 위협하려는 승리의 퍼레이드를 위해 도시로 들어온 군부대가 정권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는 4,000명의 군중에게 공격을 당하는 등 시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회안전성은 최루탄과 물 분사기로 대응했고, 군대는 땅크 (탱크)를 동원해 발포했습니다. 충돌은 차우셰스쿠가 중동나라 이란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로므니아를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시위대의 재동원에 직면한 공산주의 독재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티미쇼아라의 시위가 격화되자 12월 19일, 군대는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도시에서 가장 큰 산업 공장에 파견되었습니다.
12월 20일 티미쇼아라는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그날 로므니아 노동자, 지식인과 학생들은 민주전선(Frontul Democratic Român - FDR)이라는 혁명 위원회의 구성을 주도했습니다. 민주전선 대표들은 12월 17일 발생한 살인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체포자 석방, 차우셰스쿠와 그의 정부 사임 및 국민구원 정부 구성, 자유 언론 보장과 다른 기본적인 인권 등의 요구 사항을 제시했습니다. 같은 날 저녁, 이란에서 돌아온 차우셰스쿠는 티미쇼아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비난하고 로므니아 국내 문제에 대한 외국의 개입을 비난하는 텔레비죤 (텔레비전) 연설을 했습니다. 하지만 반공산주의 혁명이 벌써 전국으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12월 21일 오후 12시 로므니아 수도 부꾸레쉬띠 (부카레스트)에서 니콜라에 차우세스쿠는 자신의 정책과 정권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수만 명이 참여한 대중 집회를 주최했습니다. 그는 군중 앞에서 급여, 연금, 사회 보조금, 아동 수당 인상을 약속하며 연설했지만 주민들은 광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당 총비서인 차우셰스쿠와 그의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도시에 동원되었습니다. 부꾸레쉬띠의 여러 곳에서 반 차우셰스쿠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에 대해 사회안전성이 최루탄과 물 분사기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체포하고 심지어 총격을 가하는 등 폭력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전국적으로 군대가 동원되어 시위대에 대한 개입을 시도했습니다.
12월 22일 로므니아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국방부 장관 바실레 밀레아 (Vasile Milea) 장군은 시위대를 사살하라는 독재자 명령을 거부하고 자살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국영 텔레비죤과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군대와 사회안전성은 시민들에게 발포를 거부하고 혁명군 편을 들었습니다. 12월 22일 오후 12시 되자 혁명군은 공영 텔레비죤 건물을 점거했습니다. 12시 6분, 니콜라에와 아내 엘레나 차우셰스쿠는 헬기를 타고 당중앙위원회 건물을 빠져나갔습니다. 곧 혁명군은 건물을 장악하고 로므니아 공산당 붉은 깃발을 제거했습니다. 군대는 혁명을 지원하고 더 이상의 폭력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국가를 이끌고 자유 선거를 조직할 혁명적 조직인 국가구원전선위원회 (Frontul Salvării Naționale)가 구성되고 이전 정권의 모든 조직이 해산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후 수도와 전국, 특히 공항, 정부 부처, 군 건물, 공공 텔레비전 및 라디오와 같은 전략적 지역에서 아직까지 차우셰스쿠를 지지하던 독재정권 요원들에 의한 테러 행위가 광범위하게 발생했습니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도망치려다 로므니아 군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1989년 12월 25일 특별 군사법원은 차우세스쿠 부부를 대량 학살, 국가 권력 및 국가 경제 약화, 국면 전환 행위 등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그들은 사형을 선고받고 모든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1989년 12월 25일 성탄절, 14시 50분, 차우셰스쿠 부부는 총살을 당했습니다. 로므니아 텔레비죤은 저녁에 차우셰스쿠 부부의 처형 소식을 방송했습니다. 밤에는 로므니아 텔레비죤에서 재판과 처형 장면을 담은 짧은 영상이 방영되었습니다. 그이후 로므니아 전역에서 테러 공격의 강도가 약해지고 결국 테러 행위가 그쳤습니다. 미국, 마쟈르 (헝가리), 쏘련 (소련)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가 이 로므니의 새로운 지도부를 인정했습니다. 그때부터 쉽지 않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본주의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므니아는 결국 인권을 준수하고 개혁과 개방의 길을 선택하면서 유럽연합과 유럽과 북아메리카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습니다. 냉전시대 때 독재, 인권유린, 탄압, 통제와 감시가 매우 심하던, 북한과 상황이 너무나 비슷한 차우셰스쿠 정권 붕괴를 교훈삼아 독재는 영원할수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에디터 박정우,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