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5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유럽본부에서 6년 동안 유엔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을 맡았던 태국 출신의 비팃 문타폰 교수는 이 기간에 북한의 인권 상황이 계속 악화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으로 6년 동안 활동하다 올해6월에 임기가 끝날 문타폰 교수는 연설에서 북한은 인권 탄압국으로 바깥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며, 정보의 흐름을 엄하게 제한하는 북한의 인권 침해는 6년 전보다 온세계에 더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특별보고관이 유엔인권회의 (UN Human Rights Council)에 제출한 보고에 따르면 북한의 인권 유린은 '끔찍할 정도'라고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최근 북한의 화폐 개혁의 목적은 소규모의 초기 시장경제를 탄압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990년대 북한의 경제는 심한 위기에 빠져 국가의 식량 배급체계가 무너지고 북한 사람들에게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심한 식량 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희생되었습니다. 식량을 팔고 얻기 위해 북한 사람들은 장마당에서 장사하기 시작했는데,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좀 모으기 시작했지만 북한 당국은 개인에게 경제 능력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화폐 개혁을 시행했습니다.
문타폰 특별보고관은 북한 인권 상황과 북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다섯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첫번째로, 식량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북한은 사람들에게 야채와 곡식을 기르고 파는 것을 다시 허용하며 다른 국가들로부터 식량 지원을 받기 위해 국제사회에 참여해야 합니다. 둘째, 북한은 공개 처형을 중단해야 합니다. 셋째, 강제 북송을 당한 탈북자들을 더는 처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납북자들이 태어난 국가와 협조하여 북한 비밀 요원들에게 납북을 당한 다른 나라 피해자들에 관한 사실을 공개해야합니다. 다섯째, 북한 정부는 아직까지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을 인정하지 않으며 특별보고관의 방북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젠 특별보고관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합니다.
문타폰 특별보고관은 북한과 같은 인권유린국들이 스스로 주민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라 사람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유엔기관이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북한 당국의 입국 허가를 받지 못해 북한을 방문하지는 못하지만, 북한인권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탈북자와 회견하고, 인권보호단체, 또는 북한 사무실이 있는 인도주의적 지원 단체나 유엔기관에서 정보를 얻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유린은 아직까지 유엔안보리에 보고되지 않았지만, 만일 유엔안보리에 올리게 되면 국제 형사재판소까지 제출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최명남 제네바 북한대표부 참사는 문타폰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의 보고에 응답하면서 북한에는 인권 유린이 없으며 인권 침해가 심하다는 보고와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미국, 일본과 유럽연합을 포함한 여러 외국 국가들의 '적개심'에 의한 것이라 주장했고 인권유린국은 북한이 아닌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직책을 창조한 UN국가들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북한 고위관리들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한 인권유린 상황을 왜곡하고 감추려는 의도는 처음이 아닙니다. 6년전 북한은 국제 인권단체와 국제 기구의 인권개선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외무성 산하에 "인권상무조"를 설립했습니다. 냉전시대에 북한과 상황이 가장 비슷한, 북한에서는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에서도 과거 차우체스쿠 시대의 공산 독재 정권은 북한과 비슷한 '인권 문제 연구소'와 '인권상무조'를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일하는 법학자들의 임무는 국민의 인권 상황을 향상시키보다는 국제 사회의 인권개선 압력에 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루마니아의 심각한 인권 유린을 감추고, 현실을 왜곡했습니다. 당시 루마니아 사람들은 독재자의 정책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살았습니다. 공산주의 정부는 국민들에게 일정한 배급량을 정했습니다. 예를 들면, 가족당 한 달에 뼈다귀와 기름까지 합쳐서 돼지 고기 500 g, 소세지와 햄 600g, 버터 125g, 식용유 0.7 리터, 설탕 1 kg, 닭 한마리 이런 식으로 배급했습니다. 그 배급량은 턱없이 부족해 일반 서민은 어쩔 수 없이 기본 식료품을 사려고 일주일에 몇 번씩 새벽부터 가게 앞에서 줄을 서야했습니다.
이처럼 먹고사는 문제도 심각했지만 정치적 인권 상황은 훨씬 더 안 좋았습니다. 당시 루마니아 사람들은 정부의 밀고자가 두려워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공산주의 정부와 독재자를 남들 앞에서 비판한 사람들은 틀림 없이 비밀 경찰에게 체포돼 고문을 당하거나 교도소나 수용소로 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참지못해 해외로 망명하려는 사람들이 국경을 넘다 잡히면 대부분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루마니아 지식인 중에는 차우체스쿠 독재정부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에서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반응으로 차우체스쿠의 비밀 경찰이 그냥 해를 입힐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정신병자로 몰아 정신 병원에 몇 년씩 강제로 입원을 시켰습니다.
차우체스쿠가 설립한 '인권 문제 연구소'나 인권 상무조'는 루마니아 국민들을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개인 숭배를 위한 커다란 건물을 건설하기 위해 외국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야 하고 루마니아의 죽어가는 경제에도 외국 직접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서유럽의 은행과 대기업들은 인권을 유린하는 공산주의 독재자의 정부와 거래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차우체스쿠의 '인권 문제 연구소'의 주요 임무는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이나 서유럽의 언론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굶어가고 있는데도 법학자들은 루마니아의 경제 상황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떠들었습니다. 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수용소와 교도소에서 죽어갔지만 차우체스쿠의 법학자들은 루마니아의 인권 상황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인권이 인류보편적 가치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항상 루마니아만의 독특한 정치, 경제와 인권이 존재한다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또 이들은 글을 쓸 때마다 독재자와 그의 부인을 숭배하고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언급하곤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나 유엔기관이 루마니아의 심한 인권유린 상황을 보고할 경우 독재자의 법학자들과 외교관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인권 유린을 폭로하는 그런 보고는 다른 국가의 '적개심'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자에게 대외적으로 자국의 인권 상황을 왜곡해서라도 이미지를 관리하고 자신의 정권을 지속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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