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김정숙과 혁명가들의 이상주의 그리고 비극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1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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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4일은 고 김정일의 어머니이자 고 김일성의 첫 부인인 김정숙의 생일입니다. 북한에서 매우 뜻 깊은 명절로 여기는 날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니까 김정숙과 다른 초기 혁명가들은 매우 비극적인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벌써 오래 전부터 비밀로 만들어 버린 옛날 북한신문과 언론을 보면, 김정숙은 1919년에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북한 관영언론은 이 사실을 숨겼고 1917년에 태어났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상한 날조는 아마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한 그의 장남 김정일의 등장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1949년에 죽은 김정숙은 1960년대 말까지 별로 주목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김정숙을 백두산 호위장군이나 불세출의 여장군으로 선전하기 시작했을 때는 1970년대 초입니다.

그렇지만 김정숙은 진짜 대단한 여자였습니다. 당시 수많은 식민지 조선 청년들처럼 그녀는 보다 더 정의스러운 사회, 누구든지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숙은 마음속에서 꿈을 꾸었을 뿐만 아니라 1930년대 유격대 활동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북조선 선전일꾼들은 항일유격대 활동의 전략적인 의미를 아주 많이 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심한 과장과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무장투쟁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김정숙과 같은 사람들은 무장투쟁을 시작했을 때, 승리할 희망보다는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할 의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에 소련 군대가 조선반도 북부에 들어왔고 항일유격대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소련에서 지원과 후원을 많이 받으며, 새로 생긴 북조선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자신들의 이상을 실천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책에서 배운, 이와 같은 이념은 누구든지 믿고 싶은 이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같이 일하며 평등하게 잘 살고 나라를 빨리 발전시키는 사회가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설계도는 당연히 소련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책에서 예쁘게 보였던 소련식 모델은 사실상 문제점과 모순이 너무 많았습니다. 소련식 중앙계획경제는 짧은 기간 이내 고속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갈수록 경제성장이 둔화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만성적인 위기에 빠졌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체제는 짧은 기간에 옛날 봉건주의 시대의 양반제도와 많이 비슷해졌습니다. 평등함을 약속했던 체제가 사실상 매우 심한 불평등을 초래했습니다.

대부분의 초대 혁명가들은 특권과 권력이 많아서 자신들에게 매우 유익한 체제의 잘못을 보지 못한 척 하거나 암묵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김정숙이라는 유격대원은 이 비극적인 미래를 자기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1949년에 죽었습니다. 아마 김정숙은 죽는 순간까지 이상주의 미래를 꿈꿨을 것입니다. 후세의 역사학자들은 김정숙의 남편이 만든 북조선에 대해서 비판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조선 체제를 비판할 때도 젊은 김정숙과 같은 사람들의 이념주의와 헌신적인 정신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들의 이념은 사실 별로 멋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숭고한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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