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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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에 일본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북일 관계 연구가 주요 목적이었는데 여전히 부정적인 현실만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일본에도 북한과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정상화의 길을 막는 굳센 장애물이 있습니다. 바로 납북된 일본인 문제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북한 공작원들은 일본 해안 지역에서 일본인을 납치하는 공작을 벌였습니다. 납치 대상은 평범한 일반 주민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목수도 있고, 국수 요리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었고 심지어 중학교 학생까지 있었습니다. 납치당한 사람 일부는 평양에서 조용히 살거나 일부는 북한 공작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고 일본 생활을 설명하도록 하는, 공작원 교원을 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애초 납치 문제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북한의 납치에 대한 증거가 하나, 둘씩 드러나는 상황에서 갑자기 납치 공작을 인정해 버렸습니다.

2002년 9월, 김정일은 일본 총리와 평양에서 만났을 때 납치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17명이 납치됐다고 했는데 북한은 13명만 인정했습니다. 또 납치된 13명 중 8명이 이미 사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생존한 납치자 5명은 가족들과 함께 일본으로 귀국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납치 범죄 인정은 일본 내 친북 세력, 특히 조총련 간부에게 심한 충격을 줬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왜 갑자기 납치를 인정했을까요?

기본 이유는 북한은 자신들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면 일본과의 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북한은 일본과의 수교를 희망했고 일본의 원조를 기대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일본과 수교 이후 일본에서 식민지 시대의 보상으로 막대한 보상금을 받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일본 국민들이 납치된 일본인 중 8명이 죽었다는 북한의 주장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납치된 사람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당시 거의 다 30~40대이니 절반 이상이 죽었다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북한이 사망했다고 주장한 8명의 사람들이 북한 어디인가 살아있다고 믿었습니다. 곧 이 8명의 즉각적인 귀국이 북한과의 수교의 선제 조건이 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국민들의 이러한 뜻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그들이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정부가 귀국시키지 않은 일본이 가운데 공작원 훈련 교원으로 알려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마 이 8명의 납치 일본인은 북한의 국가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그들의 출국을 허용할 수 없었고 이미 죽었다는 주장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시민단체들은 납북자가 더 많이 있다고 주장하고 그들도 귀국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물론 납북 추정자 중에는 일반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니 북측은 자신이 납치하지 않은 사람까지 귀국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북한의 납치 인정은 역효과를 초래했습니다. 제가 다시 확인한 바와 같이 지금 일본과의 수교는 여전히 이룰 수 없는 꿈입니다. 40~50년 전의 납치 사건은 여전히 북일 관계 정상화의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