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 정보기관은 새로 입수한 북한 법 원문을 인터넷으로 공개했습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에게 매우 이상한 소식입니다. 북한에서 국가보위부나 정찰국이 남조선 관련 통계 자료나 정부의 내부 서류를 북한 사람 누구나 읽을 수 있게 공개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정보기관도 여러 가지 참고자료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다른 전문가들처럼 북한의 새로운 법령집을 봤습니다. 이 법령집에는 북한 헌법을 비롯해 주민행정법과 기밀법, 민사소송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제가 가장 관심이 많았던 것은 경제발전 관련 법이었습니다. 특히 기업소법을 보고 기분이 좀 좋아졌습니다.
기분이 왜 좋아졌을까요? 최근 북한으로부터 나쁜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경제개혁을 실시했던 북한은 최근에 시장화를 겨냥하는 개혁을 포기하고 다시 김일성 시대로, 중앙 계획 경제의 시대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경제관련 법령을 보면 북한 지도부가 경제 발전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자료를 보면 독립채산제라는 말은 여전히 남아있고,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도 언급도 많습니다. 이는 경제 개혁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기업소법 제38조에는 여전히 “기업소가 주민 유휴화폐자금을 동원, 리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기업소가 돈주와 같은 개인 사업가들과 협력할 수 있다는 방증입니다.
물론 북한 정부는 지금 7년 정도 실시했던 경제 개혁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가 경제 개혁을 격려하기 위해서 작성한 여러 법령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처세는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을 움직이는 특권 계층이 진짜 경제 개혁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영원히 시대착오적인 경제 구조를 유지할 생각이었다면 그들은 2010년대 시장화를 바탕으로 한 경제 개혁을 실시하기 위해 준비한 법령을 확실히 교정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기분이 좋았던 것입니다. 2010년대 북한 정부가 어느 정도 경제 개혁 차원에서 개인들의 장사를 눈감아줬을 때 북한 인민들의 생활은 향상됐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북한 경제도 훨씬 나아질 것입니다.
물론 북한 특권 계층은 현 단계에서 다시 경제 발전을 도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국제 상황을 감안해 중국을 등에 업고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조용히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의 수십 년을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가져 올 수 있는 경제체제는 시장경제밖에 없습니다. 지금처럼 가만히 있는다면 북한은 경제가 좋아질 수 없고, 이웃나라들에 더 많이 뒤쳐질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한 지도부가 지금은 시장화의 길로 가고 있지는 않지만, 그 길로 돌아가는 지도 역시 버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좋은 선택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ndrei Lankov,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