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 핵개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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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2월 10일, 정확히 2005년 2월 10일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습니다. 북한 지도부가 핵무기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지는 벌써 60년이나 되었는데요. 오늘 시간에는 북한 핵개발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김일성이 미국의 핵 폭격 직후 일본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핵무기 개발의 의지가 생겼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1950년대 말 북한은 젊은 물리학도들을 소련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학자 교류까지 시작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오늘날 공개된 소련의 외교 자료를 보면, 1960년대 초 소련은 핵무기에 대한 북한의 관심을 크게 우려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소련은 기타 핵보유국처럼, 다른 나라의 핵개발을 원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1960년대 초 북한이 영변 핵 단지를 건설하기 시작했을 때, 소련은 많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1965년 영변 핵 단지에 조립된 북한의 최초 원자로에 사용된 연료봉을 무조건 소련으로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료봉 가공으로 핵무기 핵심 재료인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1970년대 초, 북한 핵개발은 가속화 됐습니다. 가능성이 제일 높은 이유는 당시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군대 철수를 준비하기 시작하자, 한국의 박정희 정부는 국방에서 자립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군대 철수 계획을 포기했고 그 대신에 남한은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남한이 핵개발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자신들의 핵개발 속도를 높였습니다. 당시 북한의 핵개발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구 소련의 태도였습니다. 한편으로 소련은 북한의 핵개발을 통제, 진압하려 노력했지만 사실상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이 핵기술을 전수 받을 방법은 소련과의 협력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여전히 핵을 개발할 생각이 없다고 시끄럽게 주장하는 동시에, 원자력 발전소의 개발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소련은 결국 1985년 원자력 발전소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보다 더 엄격한 통제조건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들어와 소련에서 공산당 독재 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소련의 외교는 공백이 생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련 공산당 정권의 붕괴로 북한도 핵우산이 사라졌습니다.

그 때문에 1980년대 말부터 북한은 의식적으로 핵무기가 이미 있다는 소문을 노출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고 운반 수단도 아직 없었지만, 이렇게 주장함으로서 자신의 국제 위력을 강화하고, 안전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외교관들은 존재하지 않는 핵무기를 이용해 많은 것을 얻어냈습니다. 비핵화를 조건으로 한국과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은 8년 동안 북한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대북지원, 특히 많은 양의 중유를 지원받았습니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핵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거짓 약속을 하면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2006년 10월 북한은 첫 번째 핵실험을 했고 수년 뒤 핵 보유국임을 선언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