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은 왜 추석을 부활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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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은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명절이 시작하는 날입니다. 바로 추석인데요, 한국에서 추석은 민족 대이동의 날로 불리고 있는데 한국 사람 절반 이상이 자동차를 타고 조상들이 살았던 고향으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고향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고 벌초도 합니다. 한국에서 추석은 국가 창립 때부터 오늘날까지 제일 중요한 명절이자,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명절이지만 북한은 어떨까요?

북한에서 1980년대 말까지, 엄밀히 말하면 88년까지 추석은 명절이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 말 북한 정권은 추석만이 아니라 몇 개의 전통 명절을 복원합니다. 성묘이든 추석이든 다 반동적인 문화라고 주장해 왔던 북한이지만, 90년대 초부터는 방송, 신문을 통해 추석이나 설날의 전통 놀이까지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1980년대 말, 90년대 초 일어난 북한의 사상 변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북한은 국가 창립 이후 75년 동안 같은 사상이 유지된다고 주장하지만, 북한 엘리트 계층은 공식 사상의 내용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고치고 바꾸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4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까지 북한의 공식 사상은 소련식 맑스레닌(마르크스·레닌)주의였습니다. 당시의 북한은 맑스레닌주의보다는 스탈린주의 국가라고 보면 보다 정확합니다.

1960년대 초부터는 주체사상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작 단계에서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 중 하나로 소개됐다가 세월이 갈수록 주체사상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영향이 약해졌습니다. 대신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영향이 커졌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북한은 사회주의 진영 해체가 초래한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십 년 동안 극찬해 온 맑스레닌주의는 쓸모없는 옛날 장난감 신세가 됐습니다. 대신 북한은 민족주의를 열심히 강조합니다. 이런 가운데 1980년 말, 90년대 초 민족 명절이 복구되고 단군릉이 건설됐습니다.

흥미롭게도 북한 통치 계층은 그들이 국민들에게 부과한 사상 대부분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북한 국가의 사상적 기초를 보면 가짜 사상, 선전일꾼조차 제대로 믿지 않는 사상이 많지만, 유일하게 민족주의만은 그들이 진짜로 믿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세계 어디서나 집권 계층은 민족주의를 백성들을 관리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북한 민족주의는 분단국가의 민족주의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서로

다른 두 개 나라에서 같은 민족이 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 선전 일꾼들은 민족의 위대성을 주장하기 위해 같은 민족이 사는 한국을 비난해야만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북한 민족 전통이 남한 민족 전통보다 더욱 올바르고 정확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의 생활을 거의 모르는 북한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북한과 남한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과거 동독이 주장한 것인데요. 동독은 사회주의 민족과 자본주의 민족이 있다는 주장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최근에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의 고급 간부들이 남한을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이라고 부른 것은 이 방향으로 가는 신호일 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민족주의는 여전히 북한에서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제일 강력한 도구입니다.

** 이칼럼내용은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이현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