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잊혀진 선언문

란코프 ∙ 국민대 교수
20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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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코프] 잊혀진 선언문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10월 4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란코프 교수
란코프 교수
15년 전인 2007104, 많은 사람들은 남북관계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바로 그날, 10.4 공동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당시 남한 노무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만나고 이 선언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10.4선언은 거의 잊혀졌습니다. 남한에서 이 선언에 별 관심이 없고 특히 북한은 선언 발표 15주년, 정주년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영언론에서 아무 언급이 없었습니다. 사실상 10.4 선언에 있었던 많은 약속과 계획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남북관계의 역사를 보면, 10.4선언과 같은 미사여구로 가득 찬 선언서가 참 많습니다. 19727.4공동성명부터 최근의 20189.19 평양공동선언과 같은 것들입니다. 선언서들은 대략 10개 정도 있고 이 선언문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친선, 평화, 민족번영, 통일, 화해, 협력과 같은 좋은 말로 가득 차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들 선언은 대부분 구체성이 없습니다. 구체성이 있다고 해도 실현 불가능한 내용들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남한 사회가 이 선언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19727.4 공동성명 때 수많은 사람들은 통일이 곧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무 근거 없는 기대였는데요. 1970년대 초, 김일성과 북한 지도부는 남한과 통일할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하고 싶은 통일은 무력 적화 통일이었습니다. 당연히 당시 남한 정부도 북한과 통일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통일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희망과 관심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최근까지 남북 공동성명서는 남북한 양쪽에서 기념했는데요. 선언서가 발표된 날이면 남한도, 북한도 각자 행사를 열고 기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선언서의 인기도 많이 떨어진 느낌입니다. 핵심 이유는 선언들이 모두 다 장기적인 변화를 불러오지 못했고, 사실상 발표된 얼마 후부터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0.4 선언서를 살펴봅시다. 여기에는 남북한 불가침 약속이 명시돼 있는데요. 하지만 북한은 올해 4월부터 여러 차례 남한에 대한 핵 공격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불가침 약속이 헛소리라는 것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10.4선언서에서는 경제협력을 꽤 구체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 개성공단을 만들고, 안변과 남포에 남한이 조선소를 건설한다는 약속까지 있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계획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남북한 경제협력은 사실상 남한의 대북 원조입니다. 말로는 남북한 모두가 돈을 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남한 국가 예산으로 기업을 지원하지 않으면 남북경협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사회에서 경제협력으로 위장한 대북 지원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과 진보세력이 패배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대북 지원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짜증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2008년 새로 취임한 대통령 이명박은 대북 경제지원 계획을 즉각적으로 중지시켰고, 10.4선언서는 무의미한 종잇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5년 후인지 10년 후일지 알 수 없지만, 다시 관계가 개선되면 또다시 미사여구로 가득 찬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들 선언서의 중요성은 과대 평가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DREI LANKOV, 에디터 오중석,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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