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인민의 목숨으로 갚은 김정일의 성공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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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은 김정일이 태어난 지 77년 되었다고 하는 날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최근 김정일이 1941년에 태어났다는 증거가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증거대로라면 올해는 77주년이 아니라 78주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김정일이 1941년에 태어났든 1942년에 태어났든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1941년 소련 하바로프스크의 소련 군대 기지 근처에서 유라 킴으로 태어난 사람이 나중에 북한 최고지도자가 된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의 일생을 보면, 꽤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많았습니다. 그는 독재국가의 통치자보다는 예술가로서 자질이 더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투쟁과 권력투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야심도 관계가 있었습니다.

1973년 평양주재 소련 대사관과 기타 동유럽의 대사관들은 김일성의 장남이 김일성의 후계자라는 정보를 듣고 의심이 없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사회주의진영 정치문화를 감안하면 세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당시에 정치 사전과 같은 북조선 공식 자료들은 권력세습은 봉건주의 시대에만 있었던 악습이라고 묘사돼 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당시에 사회주의진영의 전통에 도전할 이유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기본 이유는 김일성이 1953년 스탈린의 사망 이후 소련의 상황을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수십년 동안 소련을 매우 참혹하게 통치했던 스탈린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스탈린은 자기 가족 중 누구를 후계자로 만들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이 사망한 후 그 전에 스탈린을 극찬하고 칭송했던 간부들은 하루 아침에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스탈린을 미친듯이 비난하기 시작했고 나라의 모든 문제가 스탈린의 실수와 무능때문에 생겼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련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김일성은 배운 게 많았습니다. 그는 후계자를 사전에 선택해야 하며 후계자가 김일성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 얼마 후, 김일성은 또 한번의 충격을 받게 됩니다.

스탈린 사후 벌어진 일들을 본 중국 모택동은 최측근인 임표 원수를 후계자로 공식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임표는 모택동이 죽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음모를 꾸몄고 모택동 정권을 타도할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본 김일성은 후계자가 자신의 가족 출신이 아니라면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김일성은 그가 건설했던 주체식 사회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사후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당시에 김정일은 유일한 후계자가 아니었습니다. 김성애가 낳은 김평일과 김영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교사상이 강한 나라에서 장남인 김정일은 이복동생들에 비해서 장점이 많았습니다. 김정일 본인이 아버지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아마 환영했을 것입니다. 김정일은 젊은 나이로 권력을 얻기 위해 열심히 투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김정일은 오랫동안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의 성공은 매우 비싼 값을 치뤄야 했습니다. 그 값은 수십만 명의 인민들의 목숨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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