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농업이라는 기관차를 움직이는 엔진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0.02.20

지난해 말, 당중앙 전원회의 자료를 보면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농업 문제와 식량난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물론 북조선 상황을 감안하면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1990년대말 세계 근현대사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기근을 경험한 북한은 식량난에 대해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전원회의의 농업정책 관련 자료를 보면서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전원회의는 농업과학연구기관 확충, 농업 인재 양성, 농업토지관리 등 효과가 나올 수 없는 공허한 정책만 나열했습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세계 역사의 경험, 또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공산당 통치 국가의 경험에서 보여주듯, 농업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농민들이 열심히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물론 다른 공산국가들도 기적과 같은 기술혁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패로 끝나 버렸습니다. 물론 농업 기계도, 기술도, 물 관리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농업이라는 기차를 움직이는 기관은 바로 농민들입니다.

1960-1970년대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경험으로부터 배운 사실은 농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다고 해도 농민들이 책임감 있게 열심히 일할 의지가 없다면 트랙터이든 비료이든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농민들이 일할 의지를 만드는 정책을 쓴 경우, 5-7년 이내에 식량난은 해결됐습니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열심히 일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농민들이 배급을 타면서 국가소유 땅에서 간부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은 물론 답이 아닙니다. 소유권이 아니더라도 경작권이 있는 땅이 생긴다면 농민들은 더 나은 수확을 얻기 위해 자기 땅에서 열심히 일할 겁니다. 물론 농민들은 이런 방식으로도 얻은 수확 중 일부를 국가에 바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자기 땅에서 마음대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기술 혁신보다 더 많은 생산을 해냈습니다.

북조선 지도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12년에 북한은 포전담당제와 분조관리제를 실시하기 시작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중국이나 베트남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2-3년 동안 북한은 새 정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북조선 지도부가 중국식 농업정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2016년 말부터 더 힘겨워진 국제 상황과 외부 압박 속에서 북조선 지도부는 농업 부분의 변화가 농민에 대한 감시, 통제, 단속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것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러한 우려감은 별 근거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혁명은 시골보다 도시에서 발생하는데 핵심 세력도 농민들보다 지식인, 노동자, 대학생들입니다. 농민들은 자유롭게 일하고 일한만큼 수확을 얻는다면 체제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중국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이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에서도 농촌에서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위기는 거의 모두 도시에서 생겼습니다.

북한도 중국처럼 농가를 중심으로 하는 포전담당제와 분조 관리제, 가능하면 농가관리제를 실시하기 시작한다면 어려운 국제상황 속에서도 식량상황은 개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이 직면할 정치적 위협도 줄어들 것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